[DBR]“무엇을 더할지보다 무엇을 뺄지 결정하는 것이 중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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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영화 포스터 제작 ‘꽃피는 봄이 오면’ 김혜진 대표

김혜진 대표는 맡는 포스터마다 영화의 느낌과 개성을 잘 살려내는 것으로 이름을 얻으며 굵직한 한국 영화들과 지속적으로 인연을 맺고 있다. 최훈석 기자 oneday@donga.com
김혜진 대표는 맡는 포스터마다 영화의 느낌과 개성을 잘 살려내는 것으로 이름을 얻으며 굵직한 한국 영화들과 지속적으로 인연을 맺고 있다. 최훈석 기자 oneday@donga.com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관객은 극장에 내걸리는 그림으로 영화를 처음 접했다. 주인공을 얼마나 비슷하게 그렸느냐에 따라 극장 간판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다. 시대가 바뀌고 영화 마케팅이 발전하면서 포스터의 역할과 지위가 완전히 달라졌다. 영화 포스터만 담당하는 팀이 꾸려지고 몇 달에 걸쳐 작업이 진행된다.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은 물론이고 각종 첨단기술과 예술적 기법이 총동원된다.

한국 영화 포스터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이 사람을 빼놓을 수 없다. 2000년 ‘박하사탕’을 시작으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시월애’ ‘스캔들’ ‘라디오스타’ ‘박쥐’ ‘도둑들’을 비롯해 최근의 ‘역린’에 이르기까지 내로라하는 한국 영화 포스터들이 이 사람의 손끝에서 태어나고 완성됐다. ‘꽃피는 봄이 오면’의 김혜진 대표다. DBR가 김 대표를 만났다.

―영화 포스터를 만드는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시나리오를 꼼꼼히 읽고 전체적인 줄거리와 분위기를 잡아가며 그에 맞는 이미지를 상상한다. 그리고 그것을 구체화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대부분의 영화 포스터는 장르가 무엇이냐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족 영화 포스터는 따뜻한 분위기를 내는 것이 좋다든지, 액션 영화는 움직임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이 좋다는 식이다. 하지만 정답은 없다. 어떤 원칙을 정해 놓고 그것에 얽매이기보다는 상황과 콘텐츠에 맞게 유연하게 바꿔가는 것이 좋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자유자재로 유연하게, 그러면서도 상황에 적합하게 바꿔갈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하게 시도해 가면서 그중에 무엇이 최적인지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와 같다.”

―포스터를 만들 때 동원하는 각종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는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다만 보느냐, 못 보느냐는 개인의 역량과 노력에 달렸다. 나는 여행을 가서도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해 뜰 때 나가서 해 질 때까지 보고 들어와야 직성이 풀린다. 효율적으로 보기 위해 계획을 매우 꼼꼼하게 짠다. 몇 시에 어디 가서 어떤 메뉴로 밥을 먹고, 조금 걷다가 어느 곳에 들어가 어떤 차를 마시고, 다시 걷다가 그 다음 골목에 있는 빵집을 가겠다는 식이다.

그런데 보기만 해서는 흘러갈 뿐 남지 않는다. 눈에 담은 것들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되새겨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곳에서 보라색을 봤다고 하자. 이 보라색이 아주 오묘해서 기억에 남았다. 영화 ‘색계’에 량차오웨이와 탕웨이가 레스토랑에 마주 앉아 있는 장면이 나온다. 둘 다 말 한마디 하지 않지만 많은 대사가 들리는 장면이다. 그 사이를 흐르는 공기, 그 느낌을 예전에 봤던 보라색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이미지로 나타낼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마음속에 담아뒀던 보라색과 영화에서 받은 느낌을 서로 연결하는 것이다. 즉 내가 떠올리는 아이디어의 상당 부분은 두서없이 흡수했던 많은 것들을 서로 연결하는 데서 나온다.”

―잘 만든 포스터는 어떤 특징을 지니나.

“영화는 길다. 떠오르는 장면도 많다. 쓰고 싶은 기법은 더 많다. 하지만 포스터는 딱 한 장뿐이다. 한 장밖에 없다. 무엇을 더해야 할지 결정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뺄지 결정하는 것이다. 이것을 잘해야 오래 기억에 남는 포스터를 만들 수 있다.”

최한나 기자 han@donga.com
#영화#포스터#꽃 피는 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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