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칼럼]“창조와 혁신은 변증법적 사고에서 생겨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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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속담에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이 있다. 비용을 낮추면 품질을 높이기 어렵다는 뜻으로 ‘트레이드오프(trade-off)’가 존재하는 선택의 딜레마를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다. 칼로리가 낮으면서 맛도 훌륭한 패스트푸드를 만들기 힘들고, 신발을 신지 않은 듯 편안하면서 스타일이 멋진 킬힐을 디자인하기가 만만치 않은 것과 비슷하다.

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
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
기업 경영에서도 이런 트레이드오프 상황에 직면할 때가 많다. ‘트레이드오프’의 저자 케빈 메이니는 이와 관련해 기업의 성패는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선택하고 포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어중간한 타협은 금물이며 어느 하나만을 선택해 최극단을 추구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클릭 한 번으로 주문에서 배달까지 책임지는 아마존은 편의성에 ‘올인’해 성공했고, 반대로 최고가 핸드백의 대명사인 에르메스는 충실성에만 집중해 명품의 자리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메이니의 주장대로 두 마리 토끼를 어설프게 쫓으려다 죽도 밥도 안 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하지만 양자택일 상황에서 반드시 단 하나의 선택에 올인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일까. 제3의 해법도 존재한다. 바로 트레이드오프 발생의 원인이 되는 모순을 극복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혁신은 모순을 극복할 때 일어난다. 주목할 점은 모순이 논리 분석을 통해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단적인 예로 삼단논법을 생각해 보자. ‘인간은 모두 죽는다-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는 식으로 논리를 전개하는 삼단논법의 목적은 오직 단 하나의 진실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론 틀에 박힌 모범답안은 나올 수 있겠지만 기존 시장을 파괴할 수 있는 창조적 해법을 기대할 순 없다. 대량생산과 효율성이 중시되던 20세기 경영 환경에선 적합한 사고 체계였을지 모르지만 21세기 지식경영 시대에 걸맞은 방식이 아니다. 지식경영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노나카 이쿠지로 일본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가 “지식창조 과정에서 변증법적 사고는 필수”라고 말한 이유다.

정·반·합의 전개를 따르는 변증법은 주어진 명제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답함으로써 끝없이 진리를 추구해 가는 과정이다. 노나카 교수는 “변증법에서 말하는 ‘합’은 타협이 아니라 고차원적인 새로운 지식체계를 동적으로 만들어 내는 프로세스”라며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기술이나 상품 개발은 서로 대립하는 것들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해 가는 연속적 운동을 통해서만 생겨난다”고 강조했다. 변증법적 사고와 행동이야말로 모순을 해결하고 새로운 지식을 창조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지식은 사회화를 통한 공유, 표출, 조합, 내재화라는 네 가지 변환 단계를 반복해 거치며 확대 재생산된다. 즉 사람들은 개개인에게 속해 있는 암묵지(暗默知·개인에게 체화돼 있지만 명문화하기 어려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식)를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공유’해 가면서 기존 지식을 수정, 발전시킨다. 이를 통해 축적된 암묵지는 언어나 이미지 등의 수단을 통해 명시적으로 ‘표출’돼 형식지(形式知·문서나 매뉴얼 등의 공식적 형태로 표출돼 쉽게 공유되고 전파될 수 있는 지식)로 바뀌어 집단 차원에서 공유된다. 이렇게 객관화된 지식은 표준화된 다른 지식들과 ‘조합’되면서 좀 더 복잡하고 체계적인 또 다른 형식지로 거듭난다. 조직 차원에서 새롭게 창조된 형식지는 이를 실제 상황에 적용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 의해 보완되고, 그 결과 각 개인에게는 새로운 암묵지가 ‘내재화’된다. 그리고 이렇게 새롭게 내재화된 암묵지는 또 다른 지식창조 사이클의 출발점이 된다.

노나카 교수는 이러한 지식 생산 과정을 ‘창조적 루틴(creative routine)’이라고 지칭하며, 창조적 루틴은 단순히 2차원 평면에서 돌고 도는 순환 운동이 아니라 3차원 공간에서 끝없이 위로 상승해 가는 나선 운동과 같다고 설명했다. 변증법적 사고와 행동은 바로 이 같은 나선 상승 운동을 지속적으로 이어 갈 수 있게 하는 핵심 추진 인자 중 하나다. “창조와 혁신은 논리분석이 아닌 ‘변증법’을 통해 태어난다”는 노나카 교수의 말을 곰곰이 되새겨 볼 때다.

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 smile@donga.com
#이방실#기업경영#창조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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