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자금 저리대출 확대 → 매매 위축 → 전세금 급등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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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계 부딪힌 부동산정책

전세난이 심화되고 있지만 정부 대책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정부는 하반기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집을 사서 전세 놓는 임대주택을 3만6000채 공급하고, 준공 후 미분양인 아파트를 전세 전환하도록 유도해 전세시장을 안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치솟는 전세금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근본적으로 집 살 여력이 있는 전세수요를 매매수요로 돌리는 게 절실하지만 ‘4·1 부동산 대책’ 등 각종 대책을 쏟아내도 주택 거래를 늘릴 수 있는 주요 정책은 여전히 국회 벽에 막혀 있다.

일부에서는 정부 전세 대책이 의도와는 달리 매매를 위축시키고 전세수요만 늘리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지적한다. 국민주택기금을 투입해 저리의 전세대금 대출을 확대한 게 대표적이다. 연리 5% 안팎의 싼값에 전세자금을 빌릴 수 있으니 고액의 전세 세입자도 집을 사지 않게 되고, 전세금만 올리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실제 2011년 말 18조 원가량이던 은행권의 전세자금 대출 잔액은 6월 말 25조5000억 원까지 치솟았다. 이상영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그동안 정부는 전세 공급자 대신 저리 대출을 통해 전세 수요자만 지원하는 데 집중했다”며 “저소득층에 국한해 대출을 지원해야 하며 동시에 민간 부문의 전세 공급자인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출금리를 연 4%대로 낮춰 이달 중 시행될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는 실효성마저 의심받고 있다. 이 제도는 집주인이 세입자를 대신해 주택담보대출을 받고 세입자는 이자를 내거나,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을 권리를 은행에 넘기고 대출금리를 낮춰 받는 것이다. 노희순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세수요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세입자를 위해 대출받을 집주인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최근 야당에서 요구하는 ‘전월세 상한제’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은 세입자에게 임차계약을 연장할 수 있는 권리를 한 차례 주고, 연 5% 이내로 전·월세금 상승률을 제한하는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여당은 각종 부동산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빅딜’ 대상으로 이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인위적인 가격 통제가 이뤄질 경우 제도 도입 전에 집주인이 한꺼번에 전세금을 올려 혼란이 더 커질 수 있다. 1989년 임대차보호법이 개정돼 전세 계약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연장됐을 때 집주인들이 미리 전세금을 올려 그해 서울 전세금이 23% 이상 급등했다. 전세공급 자체가 더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다른 대안이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이런 강압적 수단을 쓰려 한다”며 “전세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인위적 대책보다 매매수요를 독려하는 정책이 가장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 등을 통해 주택 거래를 활성화하고 구매력 있는 수요자들을 매매로 유인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중장기적으로 임대시장이 월세 중심으로 바뀌는 만큼 이에 대비한 주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이상영 교수는 “지금까지 매매와 전세시장 위주로만 사회적 논의가 돼왔는데 이제 월세를 뒷받침할 제도를 검토할 때”라며 “월세와 관련된 세금 및 금융 정책과 월세가 연체됐을 때 해결할 제도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석 교수는 “월세 전환기에 이를 감당하기 힘든 중하위 계층을 위해서는 금융지원을 확대하고, 중산층 이상의 1가구 1주택자에 대해서는 매매 시 혜택을 늘리는 계층별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임수·김준일 기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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