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학생들에게 고합니다 직장보다 열정 먼저 찾으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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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보안업체 ‘트렌드마이크로’ 에바 첸 CEO

자신의 형부, 언니와 함께 세계적인 보안업체 트렌드마이크로를 공동 창업한 에바 첸 최고경영자(CEO·사진)는 흔치 않은 경력의 소유자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아시아계 여성 엔지니어. 그렇다보니 오해도 많았다.

1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만난 첸 CEO는 창업 초기 외부 미팅에 나갔을 때의 일화를 소개했다. 회의실에 들어선 그를 종업원으로 착각한 참석자들은 대뜸 음료를 주문했다. 그는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주문대로 커피와 차를 일일이 서빙했다. 그런 뒤 칠판 앞으로 나가 자신을 소개한 뒤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눈이 휘둥그레진 참석자들은 실수를 민망해 하며 그의 발표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고 한다.

첸 CEO는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게 마련”이라며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그것을 극복해 얻는 자신감의 가치가 더 크다는 믿음으로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살아남았다”고 강조했다. 그의 창업기는 우연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대만 국립정치대에 입학해 러시아어를 공부하던 그는 2학년 때 전공을 철학으로 바꿨다. 컴퓨터에 대한 재능은 경제학을 배우러 미국에 유학 가서야 발견했다.

“컴퓨터실에서 작업할 때가 많았는데 제가 프로그래밍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컴퓨터실 관리자가 용돈벌이라도 하지 않겠느냐며 조교를 제안했어요. 그러려면 컴퓨터 전공을 해야만 했죠. 그래서 경영정보시스템을 전공하며 소프트웨어 공부에 빠져들었습니다.”

다시 대만에 돌아와 에이서 컴퓨터에서 일하던 그는 스포츠 담당 기자 등 여러 직업에 도전하다 1988년 말 미국에서 사업하던 형부, 언니와 의기투합해 트렌드마이크로를 공동 창업했다. 브라우저와 메일박스 바이러스 백신코드를 개발하던 그에게 1999년 멜리사 바이러스는 실력을 입증할 좋은 기회였다. 이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투자를 받으며 승승장구한 트렌드마이크로는 연매출 12억 달러(약 1조3400억 원) 규모의 글로벌 보안업체로 성장했다. 대만정치대에서 만난 남편은 트렌드마이크로 초기 창업멤버로 함께 일하다 나중에 중국의 유명 검색포털인 시나닷컴을 공동 창업해 2006년까지 회장을 지낸 대니얼 창이다. 또 할아버지는 은행, 아버지는 모터 회사를 세운 창업가 집안이다. 창업으로 얻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나비 모양의 귀걸이를 보여줬다. “서른 살이 넘도록 나비를 무서워했는데 언제인가 그걸 극복하겠다고 마음먹었죠. 침실에 나비 표본을 갖다 놓고 장신구도 나비 모양만 썼어요. 창업가는 슈퍼맨이 아닙니다. 불완전한 자신을 극복하는 열정을 가진 사람이죠.”

그는 서울의 한 대학에서 강연하며 취업이 어렵다는 한국 대학생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여러분은 지금 직장이 아니라 자신의 열정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서두르지 말고 자신을 믿고 탐험을 계속하세요.”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트렌드마이크로#에바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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