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조정이 곧 경영” 1970년대 구상한 최종현의 시스템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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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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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를 유기적으로 잘 운영하기 위해서 우리가 가장 중시해야 할 두 가지가 있으니 그 하나는 협동(Cooperation)이며 다른 하나는 조정(Coordination)이다.”(최종현 회장·‘사보 선경’ 1975년 2월호) 》
SK그룹의 출발점인 ‘선경’을 세우고 발전의 토대를 닦은 사람은 최종건 회장(1926∼1973)이다. 하지만 최종건 회장 타계 이후 선경을 SK그룹으로 키워낸 이는 그의 동생인 최종현 회장(1929∼1998)이다. SK그룹 사사(社史) 제목이 ‘SK 50년 패기와 지성의 여정’인데 이는 도전적이었던 최종건 회장의 패기와 일찍 미국 유학을 다녀온 최종현 회장의 지성이 시너지 효과를 내 지금의 SK그룹을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감안한 것이다. 국내 대기업 창업 1세대 중에 최종건 회장과 같이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자가 많지만 최종현 회장은 체계적인 경영을 했다는 측면에서 차별화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당시로서는 낯선 경영용어인 ‘조정’에 대한 강조다.

1962년 최종현 회장이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귀국해서 처음 일한 곳은 형이 세운 선경직물이었다. 1970년 선경직물 사장이 된 최 회장은 적자였던 회사를 살리기 위해 2300명의 직원을 1200명으로 줄이는 구조조정부터 단행했다. 이후 선경직물 수원공장의 생산성은 좋아졌지만 불량품이 줄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최 회장은 생산1부장과 생산2부장을 불러 불량품 문제에 대해 상의했다. 당시 선경직물의 생산 공정은 생산1부의 제직 공정과 생산2부의 후처리 공정으로 이뤄져 있었다. 2개 부서를 거쳐서 완제품이 만들어지는 구조였다. 생산1부장과 생산2부장은 모두 성실하고 능력도 있었다. 하지만 최 회장은 두 부장이 각자가 맡은 일에만 충실하고 사전협의나 정보교환은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오히려 두 부장의 대립과 반목이 심해 불량품이 생기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다. 최 회장은 공장장과 협의를 한 뒤 고심 끝에 고참 부장인 생산2부장을 본사 이사로 보내고 그 자리에 생산1부장과 마음이 맞는 사람을 임명했다. 불량품의 발생이 부서 간 ‘조정’이 잘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수원공장의 불량품 발생률은 크게 떨어졌다. 생산1부장과 새로운 생산2부장이 사전협의를 하며 불량품 발생 원인을 줄여 나갔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나중에 ‘조직운영에 있어서 조정(Coordination)의 중요성’이라는 글을 사보에 쓰며 이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조정을 잘한다는 것은 눈에 잘 안 보이는 요소이기 때문에 우리가 등한시하기 쉽다. 그러나 눈에 안 보이는 요소지만 회사의 실제 운영에는 상당히 크게 작용하며 절대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말로만 조정을 잘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각 부서가 반드시 수행해야 할 조정 관련 규정을 만들어서 운영해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상급자일수록 자신을 보좌하는 사람들끼리의 조정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관리자가 조정에 대해 얼마나 잘 이해하고 실행하느냐에 경영 효율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당시로서는 창의적인 경영 기법이라 할 만하다.

김선우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김선우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씨티은행의 부사장이었던 린 쇼스탁이 1982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발표한 ‘서비스 청사진’이란 논문을 보면 최 회장의 생각이 얼마나 앞선 것이었는지 알 수 있다. 서비스 청사진은 서비스가 고객에게 도달하기까지 전 과정을 2차원 평면에 그리는 것을 말한다. 주로 서비스 기업에 국한된 경영도구이기는 하지만 전반적인 업무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어 조직 내 부서들이 어떤 식으로 상호작용하는지 보여주고 업무를 조정하거나 협업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해준다. 최 회장의 협동과 조정에 대한 생각을 실제로 평가할 수 있게 보여주는 경영도구인 셈이다. 최 회장의 ‘조정이론’은 현재 SK그룹의 경영체계인 SKMS(SK Management System)의 근간이 됐다. 그리고 체계적인 경영에 대한 그의 의지는 SK그룹 성장의 바탕이 됐다.

김선우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sublime@donga.com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영저널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11호(2012년 8월 15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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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 ‘디자인적 사고’를 심어라

▼ 스페셜리포트


스티브 잡스가 죽은 지 10개월이 지났지만 애플의 성장세는 계속되고 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여전히 불티나게 팔리고 있고, 애플은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이 됐다. 흔히 애플의 저력은 ‘예술가적 직관과 엔지니어적 사고의 융합’에서 나온다고 한다. 잡스처럼 직관적, 감성적 사고와 논리적, 분석적 사고를 통합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산업디자이너이다. 문제는 이 디자이너들의 사고방식, 즉 ‘디자인적 사고(Design Thinking)’를 어떻게 경영자들에게, 또 기업문화에 이식시킬 수 있느냐다. 이번 DBR 스페셜리포트에선 디자인적 사고를 위한 구체적 방법론 및 실제 적용 사례들을 다뤘다. 디자인적 사고의 창시자 격인 로저 마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의 짧지만 통찰력 있는 글도 만나볼 수 있다.



디지털 소매시대 생존전략은…

▼ Harvard Business Review


미국 소매 업계는 대개 50년을 주기로 커다란 파고를 맞아왔다. 150년 전에 대도시가 발달하고 철도망이 확대되면서 현대적인 백화점이 생겨났다. 그로부터 50년 뒤엔 자동차 상용화 덕택에 전문 매장들로 가득한 쇼핑몰이 교외에 새롭게 조성되며 백화점에 도전장을 던졌다. 1960, 70년대가 되자 월마트, 케이마트 등 대형마트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전문매장을 특화해 대형화한 서킷시티, 홈디포 같은 매장도 등장했다. 대형마트와 대형 전문매장 모두 백화점 같은 구식 쇼핑몰의 기반을 약화시키거나 변화를 초래했다. 지금은 디지털 소매(digital retailing)가 변화의 물결을 주도하고 있다. 아마존닷컴, 이베이 등 인터넷 기반 업체들이 전자상거래라는 새로운 거래 방식을 들여왔다.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디지털 소매는 기존 소매와 차별화되는 새로운 형태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유통업체가 이런 변화에 대처하려면 ‘전방위적 소매(omni-channel)’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 미래 유통업을 주도할 새로운 전략 대안을 소개한다.
#DBR#최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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