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모 씨(43)는 지난해 8월 신용카드회사 직원에게서 달콤한 제안을 받았다. 리볼빙 서비스를 신청하면 매달 결제금액의 5∼10%만 내고 나머지를 다음 달로 미룰 수 있어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얘기였다. 수수료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김 씨는 마침 주식투자에서 큰 손실을 본 상태여서 카드사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신용등급 6등급으로는 은행 대출이 힘들어 카드대출로 100만 원을 받았다. 김 씨는 리볼빙 서비스 수수료만 30만 원 넘게 빠져나간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
그는 “매달 내야 하는 결제부담을 줄여 준다기에 처음에는 카드사에 고마운 생각마저 들었다”며 “한 푼이 아쉬운 상황에서 수수료율이 20∼30%대에 이른다는 걸 알았다면 절대 신청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카드사의 리볼빙 서비스가 저소득층의 금융 부담을 높이는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특히 김 씨처럼 신용등급이 낮은 대출자들이 이용하는 카드론 혹은 현금서비스에도 고금리의 리볼빙 서비스가 확산돼 가계부채 위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리볼빙은 매달 카드 사용액의 5∼10%만 갚고 나머지 금액은 일정한 수수료를 내고 상환을 미룰 수 있는 제도다. 미국은 전체 카드사용자의 70% 이상이 리볼빙 서비스를 이용할 정도로 보편화됐으며 국내에는 1999년 처음 도입됐다. ‘페이 플랜’ 혹은 ‘자유결제 서비스’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리볼빙 서비스 가입자 수는 약 280만 명으로 전체 카드사용자의 3.5%를 차지한다. 현재까지 리볼빙 이용 잔액은 약 6조 원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리볼빙 서비스 가입자의 35.7%(100만 명)가 신용등급 7등급 이하의 저신용자라는 점이다. 여기에 카드사들은 리볼빙 서비스 수수료로 연간 20∼30%에 이르는 높은 금리를 부과한다. 이 때문에 리볼빙 서비스를 이용하는 일부 저신용층은 불황으로 소득이 줄어든 데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리볼빙 수수료 부담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다.
실제로 리볼빙 서비스 연체율은 3.1%로 카드사의 전체 연체율 2.1%보다 더 높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리볼빙 수수료를 부담하느라 여러 카드로 돌려 막기를 시도한 끝에 결국 금융채무 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로 전락해 개인 워크아웃을 신청한 사례도 나왔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카드 리볼빙 서비스에 대한 전반적인 실태점검에 나섰다. 금융 편의성이란 측면에서는 리볼빙 서비스의 장점이 있지만 저신용층에 대한 수수료 부담이 적정한지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선 대안으로 현재 5∼10%인 리볼빙 서비스의 매달 최소결제 비율을 더 높이거나 카드대출 때 리볼빙 서비스를 금지하는 방안 등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당국 내부에선 카드사의 영업행위를 정부가 일일이 규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리볼빙 서비스는 이용자가 연체 없이 상환을 연장할 수 있는 이점도 있는 만큼 이자부담이 과도하게 높아지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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