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5명 “서류 칼로 긁어내고 3년→2년 2개월 몰래 고쳐”
은행 “실수”… 경찰 곧 소환조사
KB국민은행이 고객들에게 아파트 중도금을 대출해주면서 대출기간을 마음대로 수정한 것으로 확인돼 파문이 일고 있다. 특히 최근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드러난 일이어서 금융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더 추락시키는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22일 KB국민은행과 경찰에 따르면 회사원 A 씨 등 5명은 대출서류를 조작한 혐의(사문서 위조)로 국민은행을 검찰에 고소했다. A 씨 등은 2010년 초 서울 중랑구의 한 아파트를 분양받으면서 이 은행의 청계3가점에서 대출을 받았다. 이들은 당시 3년 만기로 중도금 대출을 받았지만 2년 2개월이 지난 올해 4월경 만기가 끝났으니 돈을 갚거나 개인 주택담보대출로 전환하라는 은행의 연락을 받았다.
이상하게 여긴 A 씨 등이 대출서류 원본을 확인한 결과 원본에는 대출기간이 3년 만기 대신 2년 2개월로 돼 있었다. 이들은 “은행의 담당 직원이 칼처럼 끝이 날카로운 물건으로 숫자 ‘3’의 아랫부분을 긁어내 ‘2’로 바꾸고 뒤에 ‘2개월’을 적어 넣거나 숫자를 모두 긁어내고 도장으로 ‘2년 2개월’이라고 찍었다”며 “중도금 대출의 상환시기를 앞당기고 주택담보대출로 빨리 전환해 이자를 더 챙기기 위해 고의적으로 서류를 조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출 서류 조작의 피해자는 A 씨 등을 포함해 30여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 측은 서류 조작에 대해서는 시인하고 있지만 담당자의 실수일 뿐 고의성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담당자가 대출을 해주면서 편의상 입주 시기까지 3년가량 걸리는 점을 감안해 대출기간을 3년으로 정했지만 나중에 입주 시기가 빠르다는 점을 알고 2년 2개월로 고친 것”이라며 “원래 고객들을 찾아 재계약을 해야 되지만 임의로 계약서의 숫자를 바꿨다”고 해명했다. 다만 대출기간을 3년으로 원상복구한 만큼 고소인들이 피해를 보지 않았는데도 이들이 정신적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고객의 허락 없이 서류를 고친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또 은행권에 만연한 ‘서류 조작’ 관행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점 때문에 비난 여론도 거세다.
실제 은행권에서는 복잡한 은행상품을 고객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점을 악용해 고객을 속여 이자율 등의 항목을 위조하는 일이 종종 발생해왔다. 한 은행 관계자는 “담당자들이 편의상 해오던 관행이 결국 곪아 터진 것”이라며 “CD 금리 담합 의혹으로 홍역을 치르는 은행들이 다시 비난을 사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편 10일 검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조만간 관련자들을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관련 대출을 담당했던 직원들은 징계조차 받지 않고 승진해 본점과 계열사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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