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맛을 찾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꿀과 물엿처럼 단맛을 내는 식재료는 다양하지만 그중 인류에게 가장 사랑을 받는 것은 설탕이다. 국내 설탕시장 규모는 9000억 원, 글로벌 시장은 180조 원이나 된다.
역설적으로 설탕만큼 소비자의 외면을 받는 것도 없다. 비만과 당뇨의 주범이라는 인식이 퍼진 탓이다. 올리고당을 비롯해 수크랄로스 아스파탐 에리스리톨 자일리톨 등 어려운 이름의 숱한 대체 감미료가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중 건강 기능성 면에서 가장 앞선 것이 타가토스(tagatose)다. 다른 대체 감미료의 미덕은 모두 갖춘 데다 식후 혈당 조절에 도움을 준다. CJ제일제당은 7년여의 연구개발(R&D)을 통해 세계 최초로 효소를 이용해 자연계에 미량으로 존재하던 타가토스를 상용화했다.
○ 나사(NASA)가 주목한 타가토스
30년 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우주인의 생체 대사를 연구하다 ‘우주인은 살이 쉽게 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나사는 이 문제를 해결할 대체 감미료를 찾기 위해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당 성분을 훑었는데 그 결과 선택된 것이 타가토스였다.
CJ제일제당이 타가토스 연구를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다. 타가토스는 NASA 덕분에 학계에 알려지긴 했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 업계의 외면을 받고 있었다. 알칼리 촉매를 이용한 화학공법은 수율(원재료 투입량 대비 최종 제품 생산량)이 너무 낮았던 것이다.
효소를 이용한 타가토스 생산은 당시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수준의 기초연구만 존재했다. CJ제일제당은 학계에서 완성한(또는 거의 완성한) 연구결과를 골라 사업화하는 기존 관행을 벗어나 타가토스에 대해 기초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 실험실서 맛 본 달콤한 감동
타가토스는 우유, 치즈, 사과 등에 매우 적은 양이 들어있다. 이를 대량생산하려면 이당류인 유당(우유에 포함된 당)을 가수분해효소를 이용해 단당류인 갈락토스와 글루코스로 쪼개고, 이 중 갈락토스를 이성화효소를 이용해 타가토스로 바꾸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이 높은 온도에서 이루어질수록 수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타가토스 효소공법 개발의 핵심은 고온에서 잘 견디는 내열성 효소를 찾는 것이었다.
CJ제일제당은 연세대 연구팀과 공동으로 내열성 효소 연구를 진행했다. 온천, 화산지대의 열천수, 심해 해저의 용암 분출수 근처에서 발견되는 극한 환경의 미생물을 수집했다. 일부 연구원은 인도네시아 화산지대에서 미생물 채집, 탐사를 하다 화상을 입기도 했다.
2006년 말 연구실에서 10g가량의 타가토스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분석 장비를 통해 수천, 수만 번 확인한 타가토스지만 ‘단맛이 안 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갖고 입에 넣었다. 타가토스가 녹으며 “아, 달다”라는 탄성과 함께 오묘한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위기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왔다. 이듬해인 2007년 세계 곡물가격이 급등하면서 타가토스의 원료인 유당 가격이 3배나 뛴 것이다. 회사 내에서는 타가토스 프로젝트를 접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연구팀은 경영진에 “우리 자신, 타가토스가 세상의 빛을 보게 해 달라”며 버텼다. 간절한 기도가 통했는지 유당가격은 내림세로 돌아섰고 타가토스 생산은 중단되지 않았다.
○ 세계로 수출되는 타가토스
타가토스는 설탕과 맛은 비슷하면서도 칼로리는 3분의 1 수준이다. GI(혈당지수)는 설탕의 5% 정도다. 다양한 장점 중 어떤 것을 마케팅 포인트로 잡느냐가 고민이 될 정도였다. 열띤 토론 끝에 내린 결론은 ‘혈당 상승 억제에 도움을 주는 감미료’였다.
이를 소비자에게 알리려면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건강기능식품 인정을 받아야 했다. CJ제일제당 동료들은 외부 연구팀이 진행한 혈당체크 임상실험에 기꺼이 자원해주었다.
건강기능식품 인정을 받은 뒤 지난해 말 일반 소비자 대상 제품에 앞서 가공식품원료용 제품의 생산을 시작했다. 그 사이 타가토스 생산 소식을 접한 소비자들로부터 “왜 대형마트에 제품이 안 보이느냐”는 문의가 빗발쳤다. 그만큼 타가토스를 기다린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4월 일반 소비자 대상 판매를 시작한 타가토스는 벌써 미국 스페인 인도에 수출을 시작했다. 이스라엘 터키 이탈리아의 식품업체와도 협상이 진행 중이다.
CJ제일제당은 전 세계에서 타가토스 생산기술 관련 특허를 가장 많이 보유한 회사다. 우리의 목표는 자일리톨 하면 다니스코라는 제조사 대신 핀란드를 떠올리듯, 타가토스 하면 세계인들이 한국을 떠올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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