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의 인기가 뜨거운 요즘 야구장 프리미엄석은 훌륭한 비즈니스 장소가 되기도 한다. 연간권 가격이 수백만 원에 이르지만 없어서 못 팔 만큼 수요가 많다. 4일 서울 잠실구장 프리미엄석에서 팬들이 맥주를 즐기며 야구를 관전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프로야구 경기를 앞둔 오후 6시. 서울 잠실야구장 주변은 요즘 인산인해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건 양복 차림의 회사원들이다. 이들은 맥주와 먹을거리를 챙긴 채 삼삼오오 경기장에 입장한다. ‘구도(球都)’ 부산 사직구장이나 인천 문학야구장 역시 가족, 연인이 즐기는 문화공간이자 직장인들의 회식 장소로 자리 잡았다.
두산 팬인 이상현 씨(47·서울 청담동)에게 잠실구장은 비즈니스 무대다. 중견 사업체를 경영하는 이 씨는 지난해 겨울 잠실구장 중앙 지정석에 앉을 수 있는 연간권 2장을 장당 250만 원을 주고 어렵게 구입했다. 중앙 지정석은 포수 뒤쪽에 위치해 야구장이 한눈에 보이는 ‘명당’이다. 이 씨는 “좋은 자리에서 야구를 보고 싶어 하는 고객이 크게 늘었다. 예전에는 술이나 골프로 접대를 했지만 요즘은 야구장으로 모시고 온다. 3∼4시간 동안 함께 ‘치맥(치킨+맥주)’을 먹으며 응원을 하다 보면 쉽게 이야기가 풀린다”고 했다.
스포츠 마케팅 업체인 IB스포츠도 잠실구장 연간권을 구입했다. 송재우 이사는 “회사 특성상 표 청탁이 워낙 많아 연간 티켓을 구입했다. 고객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전했다.
○ 입장권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
백순길 LG 스포츠단 단장은 요즘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귀한 손님 모시고 가니 좋은 좌석 좀 챙겨 달라”는 청탁을 받을 때마다 이를 정중히 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잠실구장 중앙 지정석, 일명 프리미엄석은 약 200석이다. 자리는 한정돼 있는데 이를 원하는 사람들은 급증하는 추세여서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LG는 지난해까지 좌석당 280만 원을 받던 프리미엄석 연간권 가격을 올해부터 450만 원으로 대폭 인상했다. 그럼에도 연간권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모두 팔렸다.
잠실구장을 함께 홈으로 쓰는 두산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두산은 1990년대 초부터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중앙 지정석을 연간권으로 판매했다. 2006년 80만 원이었던 좌석 가격은 올해 250만 원까지 올랐다. 두산은 120명 남짓한 기존 회원에서 결원이 생길 때만 연간권을 판매하는데 대기자 수가 200명이 넘는다.
중앙 지정석에 특별한 편의시설이 있는 건 아니다. 음식물을 놓는 테이블이 있고 늦게 입장해도 편하게 경기를 관전할 수 있다는 정도다. 그럼에도 지정석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회사원 한상균 씨(38)는 “포수 바로 뒷자리다 보니 투수가 던지는 구질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또 남들과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는 기분도 들었다”고 했다. LG 관계자는 “최근 들어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분들이나 벤처회사 사장 등 연간권 구입자 가운데 젊은층이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이 밖에 문학구장을 홈으로 쓰는 SK는 8∼16명을 수용하는 스카이박스 36개를 운영하고 있다. 은행, 대형 병원, 제약회사들이 접대를 위해 1300만∼3100만 원에 이르는 연간권을 아낌없이 구입했다. 요리를 해먹을 수 있는 바비큐존 역시 인기가 높다. 롯데의 홈인 사직구장의 중앙 지정석 연간권 500개(좌석당 161만7000원)는 판매 시작과 함께 모두 동이 났다. 700만 관중 시대를 앞둔 프로야구는 이제 단순히 경기를 즐기는 곳을 넘어 사교와 접대 장소로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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