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위키피디아는 ‘기부금 수혈’을 기다린다

정진욱 산업부 기자

1990년대 이전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집 안 책장 혹은 도서관에 꽂혀 있는 백과사전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그중 백과사전의 효시라 불리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영문판은 1968년에 처음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당시 돈으로 한 질(32권)의 금액은 180만 원대로, 어지간한 집 한 채 값과 맞먹는 금액이었다. 그럼에도 1991년까지 무려 3만4000질이 팔려 나갔다.

하지만 2001년 1월에 브리태니커의 아성을 국내외에서 한 방에 무너뜨린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참여와 공유’라는 정신을 기초로 한 이른바 ‘웹 2.0’ 시대가 열리며 위키피디아(Wikipedia)라는 온라인 백과사전이 등장한 것.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지식을 올리고, 이를 서로 공유하면서 ‘집단 지성’이라는 새로운 개념도 창조했다. 위키피디아는 전문가가 집필한 종이 백과사전의 종말을 이끈 ‘탈(脫)’지식권력의 상징인 셈이다. 현재 순 방문자 수 기준으로 세계 5위(한 달 평균 4억7700만 명)이며 세계 280개 언어로 된 1900만 건의 전문 지식이 있는 인류의 소중한 지적 자산이다.

창립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위키피디아에 이상 기류가 흐른다. 위키피디아는 광고를 일절 받지 않고 오직 기부금만으로 운영한다. 올해 초부터 외신을 통해 간간이 위키피디아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급기야 창립자인 지미 웨일스 씨가 20일 위키피디아 홈페이지에 기부를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구글은 거의 100만 대의 서버를 갖고 있으며 야후는 약 1만300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679대의 서버를 갖고 95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습니다. 5달러, 10유로, 1000엔, 5600원, 아니면 얼마든지 좋습니다.” 위키피디아의 절박한 사정을 알 수 있는 호소문이다. 기부금은 서버 관리, 서비스 개발비 등 위키피디아의 생존에 필요한 돈이다.

이에 구글 공동설립자 세르게이 브린 씨와 그의 부인 앤 워짓스키 씨는 자신들이 세운 재단을 통해 위키피디아에 50만 달러(약 5억7000만 원)를 기부하는 등 성원이 이어지고 있다. 아쉽지만 한국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전혀 없다. 광고, 정보, 정보 같은 광고, 광고 같은 정보가 어지럽게 뒤섞인 인터넷 공간에서 ‘지식’만 꺼내 볼 수 있는 수단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정진욱 산업부 기자 cool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