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 말로 재계의 화두(話頭)를 이끄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3일 “여성도 사장이 돼야 한다”고 발언했다. 그는 평소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채용이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준다면 당사자가 겪을 좌절감은 물론이고 기업이 입는 손실은 무엇으로 보상하겠느냐”고 말했다. 이 밖에도 여성 인력을 중시하는 이 회장의 어록은 많다.
이 회장이 이처럼 여성 인력을 강조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21세기 지식기반 글로벌경제에서 다양한 배경의 인력을 골고루 활용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애플이나 구글도 다양한 인종, 성별, 종교, 문화적 배경을 지닌 인재들의 개성을 창의성과 혁신으로 승화시켜 세계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나라와 업종의 경계가 무너진 글로벌 경제에서 기업 경영의 성공 비결로 조직의 ‘다양성 관리(Diversity management)’가 주목받고 있다.
컨설팅회사 액센츄어가 세계 963개 기업의 수익성, 성장성, 미래가치, 지속성, 주주수익률을 측정한 결과를 봐도 다양한 인력 활용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상위 12%의 고(高)성과 기업에서는 여성 및 해외 인력 비중이 높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처음 진출한 신규 시장에서도 현지 인력을 과감하게 뽑았다. 이른바 ‘비주류 학교’ 출신 비율도 높았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재로 이뤄진 기업이 더 강했다는 얘기다. ○ 삼성전자, 여성 인력 강화
국내 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다양성 관리에 눈을 뜬 곳은 삼성전자다. 작년 말 기준으로 해외 인력 비중이 49.8%에 이른다. 이 회사는 국내에서 일하는 1000여 명의 외국인 직원을 위해 내부 시스템을 모두 영어로 번역하고 한국어 강좌도 운영한다. 외국인 직원의 향수를 달래주기 위해 ‘인도 크리켓 동호회’ 등 다양한 취미활동을 지원하고 경기 수원사업장에서는 외국인 연구원을 위한 음식 코너도 운영하고 있다. 해외 법인에서 근무하는 현지 인력을 대상으로 일정 기간 한국 본사에 머물게 하며 삼성전자의 비전과 기업문화를 배우게 하는 ‘역(逆)파견’ 제도도 지난해부터 실시 중이다.
여성 인력 관리도 삼성전자가 다양성 관리 차원에서 중시하고 있는 부분이다. 초등학생 이하 자녀를 둔 임직원의 재택·원격 근무를 위해 수유실까지 갖춘 ‘스마트워크 센터’를 서울과 경기 성남시 분당에 설치했다. 또 대졸 신입사원 채용에서도 현재 20% 수준인 여성 비율을 30%까지 늘리고 10년 내에 현재 1.1%에 머물고 있는 여성 임원 비율을 10%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올해부터 장애인 신입공채 전형을 신설하고 장애인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디딤돌 인턴십’ 프로그램도 확대하는 등 소수 인력도 적극적으로 배려하고 있다.
○ LG상사, 외국인 인재 인턴교육
7월부터 한 달간 LG상사 석탄사업부에서 글로벌 인턴으로 근무한 인도네시아인 아구스
티나 이스마일 씨(왼쪽)와 중국인 양자오펑 씨가 서울 중구 남대문로 LG상사 본사에서
활짝 웃고 있다. LG상사 제공LG상사는 올해 국내 대학에 재학 중인 중국과 일본, 인도네시아 출신 유학생 8명을 선발해 7월 중순부터 한 달 동안 글로벌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들은 LG상사가 석탄광산 사업 등 해외 자원개발 사업을 벌이고 있는 지역 출신이다. 회사는 인턴 프로그램을 수료한 학생 중 희망자는 조만간 이들이 근무할 모국의 LG상사 법인에서 정식 직원으로 채용할 방침이다. 또 매년 여름, 겨울방학 때마다 국내의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인턴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
해외 60여 곳에 지사와 법인을 운영하며 꾸준히 현지 인력을 채용해 온 LG상사가 새삼스레 외국인 유학생에 눈길을 돌린 것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다양성 관리가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LG상사 관계자는 “해외법인에서는 ‘할 일이 남아있으면 당연히 야근해야 한다’는 한국인 상사와 이런 우리 기업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현지 직원 사이에 갈등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지만 외국인 유학생 인턴 프로그램이 정착되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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