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성장 속에 물가는 오르는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 망령이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분석했다. 국제유가가 폭등하고 식량가격이 급등하면서 각국의 소비자물가는 중앙은행의 통제 범위를 넘어서는 반면 영국 미국 일본 등 주요국들의 성장세는 급속도로 둔화되고 있는 것. 주요국의 높은 인플레와 성장 둔화로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의 재현에 대한 투자자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게 FT의 분석이다.
신문은 영국을 예로 들면서 3월 말까지의 6개월간 생산은 정체된 상태인 데 반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지난달 4%로 영국중앙은행(BOE)의 ‘목표치’ 2%를 크게 웃돌았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BOE가 올해 영국의 성장 전망치를 종전 3.1%에서 2.75%로 낮춘 점을 상기시켰다. 또 CPI가 연말까지 5%에 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덧붙였다.
미국 상황도 다르지 않다. 미국 경제성장률은 1분기에 1.8%로, 지난해 4분기 3.1%에 비해 1.3%포인트나 떨어졌다. 지난해 2분기 1.7% 이후 가장 낮은 수치이다. 반면 12일 발표된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연율 기준 3.2%로 2008년 10월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을 나타냈다.
FT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가 최근 올해 인플레 전망치를 2.1∼2.8%로 상향 조정하고 성장률 전망은 3.1∼3.3%로 하향 조정했다는 점에 우려를 표시했다. BNP파리바의 애널리스트인 로버트 맥아디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시장에 가장 큰 위험 요소로 등장했다”고 우려했다.
소시에테 제네랄의 수키 만 전략분석가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다시 오더라도 영국의 인플레 증가폭이 20%를 넘었던 1970년대처럼 심각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인플레 상승폭이 5∼10% 수준인 이른바 ‘라이트 스태그플레이션(light stagflation)’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오일쇼크와 두 자릿수의 물가상승률을 동반했던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이 재현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많다. 국제유가 등 상품가격이 최근 하향조정되는 양상을 보이고 중국 등 신흥국들이 아직도 글로벌경제의 성장 엔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 애셋 매니지먼트의 짐 오닐 대표는 “올해 하반기에는 일부 원자재 가격이 더 떨어지면서 인플레가 둔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 스태그플레이션 ::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경기침체)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불황기에 물가가 하락하고 호황기에는 물가가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1970년대 세계적으로 경기후퇴가 계속되는데도 물가가 폭등하는 현상이 지속되면서 생긴 신조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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