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日本 대지진]외환 딜링룸 하루종일 ‘극도의 긴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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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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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시장 日波韓波… 日소식 하나하나에 환율 엎치락뒤치락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뒤 서울 외환시장의 첫 거래일인 14일 서울 중구 을지로2가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밀려드는 주문을 처리하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인 11일보다 5.50원 오른 1129.70원에 마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뒤 서울 외환시장의 첫 거래일인 14일 서울 중구 을지로2가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밀려드는 주문을 처리하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인 11일보다 5.50원 오른 1129.70원에 마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다섯 개 보트(bought)!”

딜링룸의 고요가 깨진 것은 오전 11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한 외환 딜러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은행이 500만 달러(다섯 개)를 고객에게서 샀다(보트)는 주문 내용이었다. 곧바로 다른 딜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150개 보트(1억5000만 달러 매입). ‘점 삼’(1130.3원)!” 딜러들이 부르는 수치가 점점 커졌다. 한 딜러가 “10개 보트(1000만 달러 매입)”라고 외치자 다른 딜러가 “2.5(1132.5원)”라고 받아쳤다.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가치는 하락) 속도가 점점 빨라지자 딜링룸의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자리에 앉아 전화로 주문을 받던 딜러들이 벌떡벌떡 일어나기 시작했다. 전화벨이 쉴 틈 없이 울려댔다. 여기저기서 “(환율이) 많이 올라갈 것 같아”라는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14일 서울 중구 을지로2가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의 하루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딜러들도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11일 이후 첫 거래일이었기 때문이다. 14일 외환시장 충격의 정도는 향후 환율 방향을 보여주는 나침반이다. 전날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평소보다 출근을 서두른 딜러도 많았다.

오전 9시 장이 열리자 외환시장의 움직임은 예상보다 순조로웠다. 동일본 대지진이 국내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인 11일보다 0.2원 떨어진 1124원으로 거래가 시작됐다.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3호기 건물, 오전 11시 1분 폭발’이라는 문구가 컴퓨터 스크린 속보 창에 떴다. 일본 증시 폭락세에도 완만한 상승세를 보였던 원-달러 환율 그래프가 갑자기 수직 상승했다. 딜링룸의 전화벨이 일시에 울리기 시작한 시간도 이 무렵이었다. 딜러들은 “지금 (환율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주문을 기다릴 테니 연락주세요”라고 대답했다. 한 딜러가 “고객들이 불안감 때문에 거래를 주저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환율은 한때 1135.30원까지 오르며 연고점을 경신했다.

일본의 엔화 거래도 덩달아 폭증했다. 원화를 팔고 엔화를 사는 거래다. 대지진이 일본 경제의 재앙이 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에 엔화 강세에 베팅을 하는 거래 내용이 주류를 이뤘다. 한 딜러는 “외환 거래가 평소보다 2.4배가량 늘었다”며 “월말이 아닌데도 이 정도 늘어난 것을 보면 일본 대지진 여파가 외환시장에 주는 충격은 결코 작지 않다”고 말했다.

이날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5.5원 오른 1129.7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글로벌 금융위기,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건 등이 일어났을 때 원-달러 환율이 수십 원씩 오르락내리락 요동을 쳤던 것에 비해서는 상승 폭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딜러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김두현 외환은행 수석 외환딜러는 “오전 관망세를 보이며 안정을 찾나 했는데 원전 폭발 소식 하나로 불안감이 증폭됐다”며 “앞으로 일본에서 날아오는 뉴스 꼭지에 시장이 출렁거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아시아 주요 통화 가운데 유독 원화 가치만 가장 큰 폭의 약세를 보인 것도 외환시장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대목이다. 14일 원화 가치 하락폭은 0.5%였지만 말레이시아 링깃화, 태국 밧화,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등 아시아 주요 통화는 대부분 강세를 보였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한국이 일본과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국내외 투자자들이 다른 통화에 비해 더 큰 불안감을 느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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