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김박사 랩 공연-만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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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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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 머리 위로∼ 개미보다 베짱이가 많아∼”

힙합 가수들과 ‘김박사와 시인들’이라는 그룹을 결성한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앨범 발매를 앞두고 14일 경기 안성시의 동아방송예술대에서 뮤직비디오를 찍고 있다. 안성=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힙합 가수들과 ‘김박사와 시인들’이라는 그룹을 결성한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앨범 발매를 앞두고 14일 경기 안성시의 동아방송예술대에서 뮤직비디오를 찍고 있다. 안성=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 14일 경기 안성시 동아방송예술대의 한 대형 강의실. 느닷없이 빠른 비트의 음악이 울렸다. “바∼밤밤 랄라라라라 라라∼∼∼.” 이어 등장한 힙합그룹 ‘거리의 시인들’.
교단에서 경제학을 강의하던 점잖은 교수는 잠시 당황한 듯하더니 이내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급기야 교실에 난입한 힙합그룹과 랩 합동공연을 선보였다. “개미보다 베짱이가 많아∼∼∼.” 지루한 강의에 반쯤 졸던 50여 명의 학생도 클럽에 온 듯 환호했다. 》
그리고 이어진 감독의 컷 사인. 알고 보니 교수도, 힙합그룹도, 학생도 모두 뮤직비디오 촬영 중이었다. 이날의 주인공인 ‘교수’는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보수성향의 시장경제 연구기관의 수장(首長)이 춤을 추고 랩을 열창했다. 깜짝 결성한 그룹 ‘김박사와 시인들’의 앨범 발매를 앞둔 그는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노래하고 춤을 춘다”고 말했다.

보수 경제학자들이 대중과의 소통에 나섰다. 경제이슈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이 활발해지면서 이들 역시 진보성향 학자들의 전유물이었던 대중 스킨십에 나선 것이다.

같은 날 김진국 배재대 교수는 서울 여의도의 한 스튜디오에서 방송 카메라 앞에 섰다. 김 교수는 케이블TV를 통해 방영되는 ‘김정호·김진국의 대한민국 콘서트’를 김 원장과 함께 진행한다. 매일 30분씩 사회 현안을 놓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시사토크쇼다.

이날 주제는 전세난. “잠실의 33평짜리 아파트가 1년 만에 1억 원이 올라 4억5000만 원을 호가하고 있습니다.” “매매가?” “아니 전세가.” “투기억제책의 복수인 거죠.” “집 사는 사람을 범죄자 취급하니 누가 집을 사나요. 2주택자도 있어야 전세를 놓지요.”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만담을 나눴다.

김 교수는 “자유시장주의 가치를 전달할 필요성을 느껴 프로그램을 맡게 됐다”며 “주류 경제학자들은 진보성향의 학자들과 달리 대중의 공감을 얻는 데 치열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김 원장도 “진보 학자들이 대중과 세련되게 소통하는 법을 체득하는 동안 보수 학자들은 전문가들끼리만 교류해 대중의 정서를 알지 못한다”고 비판하며 노래하고 춤추는 파격을 통해서라도 젊은 세대와 코드를 맞추겠다고 말했다. ‘경쟁을 해야 강해질 수 있어. FTA(자유무역협정) 강대국∼.’ 김 원장의 타이틀 곡 가사는 자유시장주의를 웅변했다.

이들의 변화에 불씨를 댕긴 건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전작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에서 주류 경제학을 통렬히 비판한 장 교수는 지난해 하반기 출간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통해 ‘장하준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장 교수는 책에서 ‘자유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거의 없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정책들이 성장을 둔화시켰다’는 등 기존 주류 경제학의 상식을 뒤엎었다. 독자들의 호응도 뜨거워 인문학 서적으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주류 학자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어려운 경제학도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동시에 지금까지 보수 계열에서는 그런 노력이 없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박동운 단국대 명예교수는 최근 ‘장하준 교수가 잘못 말한 것들’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발표했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1980년대 영국을 신자유주의로 개혁했던 사례를 들며 자유시장을 추구한 나라들이 경제부국을 이뤘다고 반박하는 내용이다.

그는 “자유시장주의 진영에서 활발한 비판이 나오길 기대하는 마음에서 나이 70에 나서게 됐다”며 “관련 책을 집필 중”이라고 말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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