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슈퍼의 ‘나들가게’ 변신 150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정슈퍼’

동아일보 입력 2010-09-29 03:00수정 2010-09-29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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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간판 교체후 매상 5배로 껑충”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 골목길. 소규모 봉제공장과 주택들이 밀집해 있는 이곳에 자리 잡은 33m²(약 10평) 남짓한 크기의 ‘나들가게’는 여느 동네 구멍가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슈퍼’였던 이곳의 간판은 나들가게로 바뀌었고 옛날 이름은 그 옆에 조그맣게 붙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실내조명이 구멍가게와 달리 밝았다. 진열대 위 상품도 유명 편의점처럼 품목별로 정리돼 있다. 동네 가게에서는 흔히 보기 힘든 야채나 신선식품 보관용 냉장고도 갖췄다. 정슈퍼는 중소기업청이 대형 할인마트와 대기업슈퍼마켓(SSM)의 진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네슈퍼를 나들가게로 육성해 지원한다는 계획에 따라 5월 3일 1차로 개점한 200곳 중 하나다. 정슈퍼의 변신은 나들가게에 종합컨설팅과 판매시점관리(POS) 기기 및 간판교체비 등을 지원한다는 중기청의 계획에 따른 것이다.》

“가게가 몰라보게 달라졌어요” 대형 할인마트와 SSM의 틈새에서 동네슈퍼의 돌파구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나들가게. 5월 나들가게로 선정된 ‘정슈퍼’의 김성국 사장이 가게에서 물건을 정리하고 있다(위). 정슈퍼는 나들가게로 선정된 뒤 인테리어부터 간판까지 매장을 새롭게 단장하며 예전(아래)의 동네 구멍가게 모습에서 벗어났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사실 정슈퍼도 여느 동네 구멍가게와 다르지 않았다. 허름한 외관과 어두운 조명 아래 상품들은 정리되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그래도 벌이는 나쁘지 않았다. 김성국(38) 서현정 씨(36·여) 부부가 정슈퍼를 운영하기 시작한 건 2002년 7월. 당시 하루 매출은 70만 원 선이었다. 손님이 많은 날은 100만 원까지 벌었다. 하지만 2006년경부터 근처에 대형 할인마트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변했다. 서 사장은 “2008년부터는 하루 매출이 30만 원 수준까지 떨어졌다”며 “우유나 담배를 갖다 주고 돈을 받아가는 영업사원이 저승사자로 보일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나들가게로 선정된 정슈퍼는 변신을 시도했다. 실내 인테리어를 바꾸고 간판도 새로 달았다. 이 과정에서 중기청의 지원 외에도 쌈짓돈 3500만 원을 더 투자했다. 동네 후미진 곳에 있다 보니 가게가 밝고 깨끗해진 것만으로도 변화가 생겼다. 간판을 바꾸기 전에는 손님들이 “도깨비가 나올 것 같다”며 발걸음을 돌렸지만 이제는 젊은 층도 가게를 찾는다.

POS 기기 도입도 효과가 컸다. 계산기로 계산을 할 때에는 “다시 한 번 계산해 달라”며 의심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POS 기기를 사용하자 가격과 계산과정을 손님이 볼 수 있게 돼 신뢰가 쌓이기 시작했다. 이런 효과로 개점 한 달이 지나자 매출이 두 배로 늘었다. 7월에는 2002년 수준을 회복했다. 29일 개점 150일을 맞는 정슈퍼는 현재 하루 150여만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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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35년째 ‘서현슈퍼’를 운영하고 있는 박태수 서울서부슈퍼마켓조합 이사(70)에게도 나들가게는 희망이다. 서현슈퍼도 대형 할인마트와 SSM의 등장으로 2006년경부터 매출이 떨어졌다. 2000년 200만 원에 달하던 하루 매출이 지난해에는 30만 원대로 곤두박질쳤다. 300여 m 떨어진 곳에 SSM이 들어선 것이 직격탄이었다. 박 이사는 “지난해 인근 5개 동네슈퍼 중 2개가 문을 닫을 정도여서 가게를 접고 은퇴까지 고려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들가게로 선정된 뒤 매출이 호전됐다. 페인트칠부터 다시 하며 새 단장을 했다. 한 달이 지나자 하루 매출액이 60만 원을 넘어섰다. 석 달이 지난 지금은 100만 원대를 회복했다.

나들가게에 대한 평가는 좋은 편이다. 1차로 문을 연 나들가게 200곳에 대해 중기청이 6월 15일부터 같은 달 18일까지 조사한 결과 98.3%의 점포가 개점 전보다 하루 매출액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54.5%는 개점 전과 비교할 때 매출이 10% 이상 늘었다. 응답점포의 93%는 “점포 환경 변화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중기청은 올해 ‘나들가게’ 개점 목표를 당초 2000곳에서 2400곳으로 늘려 잡았다.

▼ 나들가게, 구매파워 키우는 게 최대 과제 ▼

하지만 나들가게의 상품가격은 대형 할인마트나 SSM보다 높다는 것이 가장 문제다. 공동구매를 통해 구매파워를 높여 가격경쟁력을 갖추는 일이 앞으로 풀어야 할 최대 과제인 셈이다. 가격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1993년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가 선보인 동네 슈퍼마켓 공동브랜드 ‘코사마트’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본보 2009년 8월 8일자 15면 참조
16년전 만든 ‘코사마트’ 실패 되풀이할까 우려


박 이사는 “나들가게가 코사마트의 길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회원사를 늘려 구매파워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7월 나들가게로 선정된 서울 마포구 염리동 ‘대현슈퍼’ 장충호 점주(40)도 “규모를 갖추고 인테리어에도 신경을 쓰고 있던 가게는 간판과 POS 기기 지원만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며 “상품가격을 SSM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중기청 관계자는 “2012년까지 나들가게 1만 곳을 육성하고 전국에 공동물류센터를 15개 정도 지을 예정”이라며 “현재 시범적으로 100여 개 품목을 공동구매해 도매가보다 10% 정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고 있는데 앞으로 품목을 확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 나들가게 ::

‘정이 있어 내 집같이 드나들 수 있는 나들이하고 싶은 가게’라는 뜻. 중소기업청이 1월 대형 할인마트와 대기업슈퍼마켓(SSM)의 진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네슈퍼를 육성한다는 계획에 따라 마련한 명칭이다. 매장면적 300m² 이하로 6개월 이상 영업을 해 온 동네슈퍼를 대상으로 지방중소기업청 등의 선정위원회를 통해 선정한다. 8월 31일까지 전국에 1435개의 나들가게가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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