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中企추석특별자금 ‘억지춘향 편성’

동아일보 입력 2010-09-21 03:00수정 2010-09-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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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설이나 추석이 되면 은행들은 자금부족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을 위한다며 특별자금 지원계획을 발표한다. 은행별로 적게는 수천억 원에서 최대 1조 원에 이르는 명절 특별자금을 낮은 금리로 대출해 준다고 생색을 낸다.

올해도 18개 국내은행이 8조 원 넘는 추석자금을 방출한다고 발표했지만 은행 대출창구에서 중소기업인을 보기가 어렵다. 명절특별자금 목표액은 그럴듯한 중소기업 지원 정책을 내놓으려는 정부의 강요에 은행들이 ‘억지 춘향식’으로 마지못해 적어낸 수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압박 때문에 시중은행들은 명절 때마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지난해 추석특별자금을 편성한 7개 시중은행 가운데 절반 이상은 실제 추석특별자금 집행 실적이 목표액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일부 은행의 경우 추석 전후 석 달간 이뤄진 중소기업 대출은 모두 추석특별자금 지원 실적으로 포함시키는 등 ‘눈속임 지원’도 적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올 추석에도 마찬가지다.

○ 5000억 원 편성해놓고 실제 지원은 450억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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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민 신한 우리 하나은행 등 7개 시중은행은 추석특별자금으로 3조200억 원을 편성했다. 은행별로 적게는 1000억 원에서 많게는 1조 원까지 평소보다 0.1∼2%포인트 싼 금리로 대출을 해준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실제 중소기업에 대출해준 금액은 2조7500억 원에 불과했다. 당초 목표치인 5000억 원을 훨씬 초과해 7248억 원을 대출해준 A은행을 제외한 6개 은행의 대출액은 2조 원가량으로 목표액의 80% 수준에 그쳤다.

7개 시중은행 중 절반이 넘는 4개 은행이 당초 추석특별자금 목표액을 채우지 못했다. 이 가운데 2개 은행은 추석특별자금 사용액이 목표액의 절반을 밑돌았으며 5000억 원대 지원을 약속했던 B은행은 당초 목표액의 10분의 1 정도인 450억 원만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수천억 원을 지원한다고 발표하지만 실제 이뤄지는 중소기업 지원액은 발표액에 크게 못 미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매년 명절마다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설 연휴를 전후해 중소기업에 3조780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시중은행들이 집행한 중소기업 대출 역시 목표액의 절반을 밑도는 1조8882억 원에 불과했다. 한 시중은행은 설 연휴기간에 단 1억 원을 지원했으며 1000억 원대의 지원을 약속했던 지방은행들의 실적도 겨우 100억 원을 넘기는 수준에 그쳤다.

중소기업 지원 실적을 ‘뻥튀기’ 하는 은행들도 적지 않았다. 원래 추석특별자금은 직원급여나 상여금 지급, 협력업체 결제자금에 필요한 중소기업 운영자금을 신규대출해 주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일부 은행은 추석 연휴기간 만기가 돌아온 중소기업 대출을 연장해주고 이를 실적으로 잡는 것은 물론 추석 앞뒤 석 달간 이뤄진 중소기업 대출도 추석특별자금 지원에 포함시켜 실적을 부풀리고 있다.

○ 전시용 특별자금 편성, 올해도 반복될 듯

이처럼 명절특별자금 지원이 ‘전시(展示)용’에 그치고 있는 것은 정부 눈치 보기에 급급한 은행들이 주먹구구식으로 특별자금 지원 계획을 편성하기 때문이다.

시중은행들은 매년 추석과 설 연휴 한 달 전부터 중소기업청과 금융당국에 중소기업 명절특별자금 지원 계획을 제출하고 있다. 친(親)서민, 중소기업 지원을 강조하는 정부 방침에 따르려다 보니 실제 중소기업 자금 수요나 은행들의 자금 지원 의지와 상관없이 전년도 자금 지원 계획보다 무조건 목표액을 늘려 잡으려는 압박이 만만치 않다. 실제 2007년 이후 시중은행 7개를 포함한 18개 국내은행의 추석특별자금 편성액은 매년 크게 늘고 있다.

한 시중은행 담당자는 “추석특별자금을 매번 정부에 보고하다 보니 목표액은 전년도와 비슷하거나 많이 편성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며 “추석자금 편성에 앞서 담당부서에서 중소기업 자금수요나 전년도 지원실적을 올리지만 이는 참고자료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들의 전시용 특별자금 지원책 발표는 올해도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7개 시중은행이 편성한 추석특별자금은 4조800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1조600억 원 늘었다. 산은 기은 농협 지방은행을 포함한 18개 국내은행의 추석특별자금은 지난해보다 50%나 늘어난 8조7000억 원이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중소기업의 대출 요청은 지난해보다 크게 줄고 있어 실제 추석특별자금 집행액은 목표에 크게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시중은행 중소기업 대출 담당자는 “잘나가는 기업은 현금을 쌓아 놓고 있어 대출이 필요 없고 자금이 필요한 기업들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실적이 떨어져 대출심사를 통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추석특별자금은 늘었지만 어디다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추석특별자금은 정부에서 추석 때 대출해줄 자금이 얼마냐고 물어 적어준 목표금액일 뿐”이라며 “대출을 해주라고는 하지만 일선 지점에서는 대출심사를 통과하기 어려운 중소기업까지 대출을 해주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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