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메디치 가문의 창조 경영 리더십

동아일보 입력 2010-09-11 03:00수정 2010-09-11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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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할 줄 아는 사람만이 통치할 수 있다
보티첼리가 그린 ‘불굴의 용기’ 보티첼리의 ‘불굴의 용기’는 폭력과 갈등을 싫어했으며 관용의 리더십을 추구했던 피에로 데 메디치의 정신을 표현한 명작이다.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진 제공 김상근 교수
보티첼리의 그림 ‘불굴의 용기’에는 공상에 잠겨 있는 섬세한 여인이 등장한다. 용맹을 드러내야 할 여장군은 의자에 조용히 앉아 있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그녀의 손동작은 전투를 앞두고 있는 투사의 모습이 아니다. 사색의 표정으로 먼 미래의 평화를 상상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그림은 위대한 아버지(이탈리아의 국부로 불렸던 코시모 데 메디치)와 훌륭한 아들(로렌초 데 메디치)을 두었지만 정작 자신은 고질병으로 병상에서 생활해야 했던 피에로 데 메디치의 리더십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관용의 리더십

피에로 데 메디치는 피렌체 시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코시모 데 메디치의 맏아들이다. 피에로는 슬픈 표정으로 기억될 만한 인물이다. 메디치 가문의 역사를 다룰 때 피에로는 코시모와 로렌초를 잇는 혈통의 연결고리로만 소개된다. 그는 메디치 가문의 고질병이었던 통풍(痛風)병에 걸린 중증 환자였다. 리더로서 피에로는 마음고생이 심했다. 코시모의 장남이었지만 동생에게 후계자 자리가 물려진다는 사실을 알았고, 동생이 죽자 자기 아들이 후계자가 될 것이란 사실을 알았다.

피에로는 마음의 상처를 입을 만한 환경 속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남아 있는 어떤 기록에도 피에로가 분노하거나 질투의 격정에 휘둘렸다는 평가가 없다. 오히려 그는 온화한 성품을 가진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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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도 지적했지만 온화한 품성을 가진 사람은 리더십에 도전을 받기 마련이다. 아버지 코시모가 임종하고 겨우 2년이 지난 시점에 메디치 반란 사건이 일어났다. 착한 성품과 신체적 한계를 가진 메디치 가문의 임시 수장인 피에로를 제거하려는 음모가 추진된 것이다. 피에로가 보여준 관용의 리더십은 여기서 시작된다. 그는 온화한 품성과 탁월한 인격을 발휘해 모든 반란자의 즉각적인 사면을 결정했다. 그는 메디치 가문을 중심으로 피렌체 사회가 통합되는 게 모두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피에로의 관용의 리더십에 충격을 받은 암살 주동자는 자신의 잘못된 판단에 용서를 구하고 평생 메디치 가문의 충성스러운 신하가 되겠다고 맹세했다.

피에로는 통치의 기본을 알았다. 피는 또 다른 피를 부르고,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낳는다. 피의 원한과 보복의 악순환은 자신의 아들과 손자의 미래에 엄청난 시련을 안겨줄 것이라고 판단했다. 관용과 화합을 베푸는 길만이 메디치 가문과 피렌체에 미래의 평화를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했다. 피에로가 선택했던 관용의 리더십을 가장 정확하게 이해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아들 로렌초였던 모양이다. 그는 아버지가 내린 사면 조치에 대해 친구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용서할 줄 아는 사람만이 정복할 줄 안다.”

피에로 데 메디치 피에로 데 메디치의 흉상. 미노의 1453년 작품으로 현재 피렌체의 바르젤로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진 제공 김상근 교수
○ 미래를 준비하는 리더

피에로는 자신의 어린 아들 로렌초에게 메디치 가문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는 로렌초에게 최고의 교육을 시켜 미래를 준비한다. 아버지 코시모의 총애를 받았고 인근 마을 카레지에서 플라톤 아카데미를 이끌고 있던 마르실리오 피치노를 로렌초의 개인교사로 임명했다. 로렌초는 당대 최고의 인문학자에게 교육을 받은 셈이다.

이 외에도 피에로는 로렌초를 로마 명문가의 규수인 클라리체 오르시니와 결혼시킴으로써 한 세대를 앞서 미래를 준비하는 놀라운 예지력을 보여줬다. 오르시니 가문은 중세시대부터 총 3명의 교황과 무려 34명의 추기경을 배출한 바 있는 명실상부한 로마의 최고 가문이었다. 반면 당시의 메디치 가문은 평범한 중산층 출신으로 작은 도시국가였던 피렌체의 간접적인 통치자에 불과했다.

피에로는 오르시니 가문과의 혼인을 성사시켜 메디치 가문의 미래를 준비했다. 메디치 가문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만약 피에로의 이 같은 결정이 없었다면 메디치 가문은 15세기에 사라졌을 수도 있다. 실제 1494년 폭동이 일어나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에서 축출당하기도 했다. 모든 재산은 공화정 폭도에 의해 강탈당해 빈털터리가 됐다. 이런 위기를 극복한 인물이 바로 조반니 데 메디치다. 그는 1513년에 레오 10세의 법명으로 교황으로 등극해 위기의 메디치를 다시 구했다. 그 뒤를 이어 교황으로 취임한 클레멘트 7세 역시 메디치 가문 사람이었다. 메디치 가문이 이처럼 교황을 배출한 명문가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오래전에 로마 명문가 오르시니 가문과의 혼사를 성사시킨 피에로의 예지력 덕분이다.

리더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리더의 덕성이 충분하지 못하다면 관용의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용서할 수 있는 사람만이 통치할 수 있고, 피에로처럼 때가 아닐 때는 조용히 미래를 준비하는 ‘불굴의 용기’가 필요하다.

김상근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

정리=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이 글의 전문은 DBR(동아비즈니스리뷰) 65호(9월 15일자)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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