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제조사 ‘보조금’ 힘겨루기에 소비자 멍들 판

  • 동아닷컴
  • 입력 2010년 4월 30일 03시 00분



휴대전화 가격 들썩… 내막 들여다보니

통신사 주장
“제품값 너무 비싸게 책정”

제조사 주장
“판촉비 떠넘겨 적자볼 상황”

소비자 영향
스마트폰에 보조금 쏠려
일반기기 사면 더 손해볼 듯

《휴대전화 값이 들썩거리고 있다. 정부가 무선인터넷 활성화 정책을 내놓고 통신사들이 데이터통화료 할인 등을 시작하면서 스마트폰 가격 역시 떨어질 것이라던 예상과는 달리 이달 말 등장한 새 스마트폰 값은 예전보다 오름세다. 게다가 스마트폰이 아닌 대다수 사용자가 사용하는 일반 휴대전화는 앞으로 스마트폰보다 값이 더 많이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통신사가 휴대전화 보조금을 줄이고 있고, 휴대전화 제조업체도 그동안 휴대전화 보조금으로 내던 ‘제조사 장려금’을 줄이거나 더 올리지 않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최근 KT의 이석채 회장은 “휴대전화 가격에 거품이 끼어 있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제조업체가 휴대전화 가격을 지나치게 비싸게 정한다는 것이다. 통신사와 제조사가 보조금을 잔뜩 줘 할인을 하기보다는 처음부터 제품 값을 합리적으로 정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제조사들의 얘기는 다르다. 국내 통신시장은 통신사가 휴대전화를 제조업체로부터 사서 이를 소비자에게 재판매하는 구조라 통신사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통신사가 제조사에 보조금을 함께 나눠 지급하자며 ‘제조사 장려금’을 요구했기 때문에 제품 값을 올리게 됐다는 해명이다. 제조사 장려금은 원래 제조업체가 휴대전화를 파는 일선 대리점에 지급하던 판매촉진비였다. 그런데 통신사가 마케팅 협력비용, 할부지원금 공동부담 등 이러저런 명목으로 장려금 대상을 늘리며 액수도 천정부지로 올랐다.

한 휴대전화 제조업체 임원은 “3년 전 휴대전화 한 대에 3만 원 정도를 주던 제조사 장려금이 최근엔 대당 평균 30만 원까지 올랐다”며 “분기(3개월)당 3만 원씩 오른 셈인데 제품 가격을 올려 ‘눈속임’을 하지 않으면 큰 적자를 볼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젠 눈속임도 한계다. 28일 1분기(1∼3월) 실적을 발표한 LG전자는 휴대전화 단말기 부문에서 이익을 거의 내지 못했다. 영업이익률은 0.9%에 불과했다. 그나마 중국 등 해외 신흥시장 판매가 두 배 이상 급성장한 덕분이었다. 관련 업계에서는 운영비용을 감안하면 LG전자가 내수 시장에서 사실상 적자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와 팬택도 내수 시장 적자를 우려하고 있다.

게다가 방송통신위원회와 통신사들이 마케팅 비용을 매출의 22% 이내로 제한하기로 합의하면서 통신사가 지급하는 보조금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팬택의 안드로이드폰 ‘시리우스’는 월 4만5000원 요금제에 2년 약정으로 가입할 경우 29만1200원의 단말기 값을 내야 한다. 삼성전자가 이번 주부터 판매할 ‘갤럭시A’도 같은 요금제에 가입할 경우 27만∼30만 원에 팔릴 것으로 예상된다. 예전 모델인 애플 ‘아이폰’과 삼성전자 ‘T옴니아2’는 같은 요금을 낼 경우 각각 26만4000원과 24만 원에 팔렸다. 스마트폰 값이 점점 오르는 것이다.

그래도 스마트폰은 사정이 낫다. 워낙 값이 비싸 제조사가 장려금을 부담하고도 이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통신사들도 데이터통화료 수입이 큰 스마트폰의 보조금은 덜 줄이고 있다.

문제는 일반 휴대전화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최근 보조금을 점차 줄이고 있는데 경쟁이 치열한 스마트폰 대신 일반 휴대전화에서 크게 줄인다”며 “아무래도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손해”라고 말했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국내에 보급된 스마트폰은 약 120만 대로 추산된다. 연말까지 사용자가 크게 늘어난다고 해도 500만 명을 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전체 휴대전화 가입자는 약 4400만 명에 이른다. 한 휴대전화 제조업체 관계자는 “스마트폰에 보조금이 집중되면 결국 일반 휴대전화 사용자가 부담을 떠안게 된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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