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넥스 전 직원 500명이 詩지은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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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6일 20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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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감동 詩로 되새겨보자”
사내 공모전 치열한 경합
65세 정순희씨 ‘장원’ 차지

'억겁의 세월동안 쌓인 인연으로/눈에 보이지 않는 당신을/우리는 고객이란 이름으로 맞이했습니다/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는데/소중하게 맞이한 당신을 위해/우리가 할 수 있는 최상의 보답은/혼을 담아 만든 제품을 당신께 선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지막으로 '시'를 써본 게 언제인가요? 대부분의 성인에게 시 짓기란 초등학교 시절 백일장 대회 이후 해본 적 없는 오래전 기억이겠죠. 그런데 최근 가구기업 '에넥스' 직원 500여명이 단체로 시 짓기에 나서 화제입니다. 서울 본사, 연구소 직원부터 충북 영동 황간공장에 근무하는 현장직원까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시를 지었다고 하는데요. 바로 '고객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라는 주제로 열린 사내 시 공모전 때문입니다.

이번 공모전은 "시를 통해 고객감동경영 실천 의식을 되새겨보자"는 경영진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고 합니다. 대다수의 직원이 수년, 혹은 수십 년 만에 펜을 들고 시를 써야 했으니 당황스러웠을 법도 한데요. 뚜껑을 열어보니 의외로 훌륭한 작품이 많았다고 합니다. 에넥스의 한 직원은 "비록 사내공모전이긴 하지만 시를 짓는다고 생각하니 한 가지 주제(고객감동)에 대해 온 마음을 다해 고심하게 되더라"며 "'고객감동'을 주제로 한 지금까지의 어떤 사내 교육보다도 효과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 제출된 500여 편의 시는 사내 공모전답지 않게(?) △1차 각 부 팀장 △2차 사내 심사단 △3차 임원 △4차 박유재 에넥스 회장 △5차 박갑수 서울대 명예교수(국어교육) 감수를 거쳐 엄정하게 심사됐다고 합니다. 평가 기준은 '고객감동', '실천의식', '독창성' 등이었다는군요. 사내 심사단에 참여했던 한 직원은 "무엇보다 직군별로 시의 특징이 다르게 나타나는 점이 신기했다"며 "영업직은 고객 서비스를 강조하고 생산직은 장인정신을 강조하는가하면, 디자인직은 감수성이 남달라서인지 유독 예술적인 작품이 많았다"고 전했습니다.

앞에 소개된 시는 이렇게 치열한 경합 속에 1등을 차지한 황간공장 생산2팀 정순희(65) 씨 시입니다. 1991년 에넥스에 입사한 정 씨는 19년 동안 수작업으로 제작되는 최고가 부엌가구만 만들어왔다고 하는데요. '고객이란 이름의 당신께'란 제목의 이 시에서 정 씨는 고객만을 위하는 장인정신을 '인연'이라는 말로 풀어내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정 씨의 시는 지난주 전국의 에넥스 매장에 액자로 제작돼 걸렸다는군요. 내년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는 정 씨에게는 더욱 뜻 깊은 시가 될 듯 합니다.

임우선 산업부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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