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동빈 기자의 자동차 이야기]고속도로 최고속도 높아진다는데…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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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자 교통의식은 여전히 ‘공회전’

고속도로의 제한속도가 예고됐던 대로 최고 시속 120km로 올라가게 됐습니다. 경찰청은 21일 고속도로 최고속도를 10km 상향하는 내용을 담은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을 경찰위원회에 상정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시속 100∼110km인 현재 고속도로 제한속도는 대부분 110∼120km로 높아지게 됩니다. 최고속도 상향조정은 2005년 여야 의원 26명이 관련 법안을 발의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건설된 고속도로는 설계속도가 높아졌고 기존 고속도로도 선형 개선이 이뤄지면서 이 같은 논의의 근거가 됐습니다. 게다가 지난 10년간 국산 자동차의 성능도 비약적으로 향상돼 과거 기준을 고집할 필요가 없어진 거죠. 물리적인 상황들을 감안하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최근 전남도는 건설 중인 목포∼광양 고속도로를 독일 아우토반처럼 속도제한을 폐지하자는 주장까지 내놨습니다.

그런데 불안하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왜 일까요. 우선 운전자들의 교통질서 의식이 높아진 속도를 따라잡을지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모든 운전자가 동경하는 아우토반은 정말 넓고 곧게 뻗은 꿈의 도로일까요. 수년 전 직접 운전해서 5000km 정도를 달려본 결과 생각보다 도로가 좋다는 인상은 받지 못했습니다. 곳곳이 공사 중이었고 완만하지만 커브길도 많더군요. 그 대신 놀라웠던 것은 운전자들의 주행질서 의식과 도로를 관리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아우토반을 달리는 운전자들은 추월차로와 주행차로를 철저히 구분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전체적인 흐름을 중요하게 여길 줄 알았습니다. 화물차들도 정비가 부실하거나 무리하게 짐을 싣지 않아 고갯길에서 지나친 서행으로 교통흐름을 깨지도, 그렇다고 과속하지도 않고 정해진 속도에 따라 기차처럼 일렬로 달렸습니다. 1, 2km마다 나타나는 전광판은 전방의 교통상황을 실시간으로 반영해 제한속도를 수시로 조절하며 안전운행을 도왔습니다. 아우토반이 속도무제한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도로가 좋아서만은 아니었던 것이죠.

사실 국내 고속도로도 달려보면 대부분 130∼140km까지는 심리적인 부담감 없이 주행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고 평가되지만 전체적인 차량의 흐름을 판단해 지혜롭게 달리는 운전자는 별로 없습니다. 무조건 이리저리 추월하며 빠른 속도로 달리는 운전자, 아무런 생각없이 추월로만 주행하는 운전자, 뒤에서 달려오는 차는 생각도 하지 않고 불쑥 끼어드는 운전자, 시속 50km로 힘겹게 언덕길을 올라가는 화물차를 시속 60km로 추월해 급브레이크를 밟게 하는 또 다른 화물차.

현실이 이런데도 한쪽에선 운전면허 취득의 간소화를 추진하고 반대쪽에선 제한속도를 상향하면서 과속단속카메라로만 운전자의 속도를 묶어두려는 이해하기 힘든 교통행정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과연 교통선진국으로 가는 길인지, 교통문화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있기나 한지 정부에 묻고 싶습니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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