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퀄컴” 팬택이 웃었다

  • 입력 2009년 8월 19일 02시 55분


2년간 끈질긴 노력 결실
7600만달러 퀄컴 자본 유치

‘IT 동반자’ 입지 함께 강화

“우리 회사에 투자해 주십시오.”

2007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의 퀄컴 본사. 박병엽 팬택계열 부회장은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인 퀄컴의 폴 제이콥스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 부회장을 수행한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 사전에 퀄컴 실무진과 상의 없이 꺼낸 제안이었다. 퀄컴은 휴대전화 제조사에 직접 투자한 선례가 없었다. 게다가 당시는 팬택계열이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돌입한 이듬해로 자금 사정이 크게 악화됐을 때다. 하지만 박 부회장은 팬택계열이 못 낸 로열티를 퀄컴이 팬택계열의 주식으로 전환해 주면(출자전환) 서로 이득을 볼 수 있다고 강하게 설득했다.

그로부터 2년 2개월이 흐른 이달 18일 퀄컴은 팬택계열에 투자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팬택계열은 이날 퀄컴에 대한 로열티 등 미(未)지급금 7626만 달러(약 955억 원)를 출자전환하기로 퀄컴 및 팬택계열 채권단과 합의했다고 공시했다. 휴대전화 제조사에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원천기술 등에 대한 로열티를 주(主) 수익원으로 삼는 퀄컴이 휴대전화 제조사에 직접 투자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퀄컴은 우선 4739만 달러(팬택 1697만 달러, 팬택앤큐리텔 3042만 달러)를 출자전환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퀄컴은 팬택과 팬택앤큐리텔의 지분을 각각 12.55%, 12.17% 확보해 1대 주주인 한국산업은행(팬택 13.87%, 팬택앤큐리텔 12.23%)에 이어 2대 주주로 올라섰다. 퀄컴은 지분 15% 이상은 보유하지 않고 경영에도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투자 유치가 성사되기까지 실무 협상에서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제이콥스 회장이 “팬택계열의 기술력과 성장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다. 박 부회장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뒤 양측 실무진은 수차례 협상을 벌였다. 이후 지난해 12월 박 부회장이 미국에 건너가 제이콥스 회장과 투자유치 기념행사까지 치렀다고 한다. 하지만 출자전환 시기 및 가격, 각종 법적 절차 등 세부 사항을 조율하느라 최종 계약까지는 8개월이 더 걸렸다.

퀄컴의 이번 투자는 양측 모두 ‘윈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팬택계열은 퀄컴에 지급해야 할 로열티를 자사(自社) 주식으로 바꿔 재무적으로 건전해지고 핵심 모바일 칩 기술을 보유한 ‘우군(友軍)’을 확보하게 됐다. 또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가 비교적 낮았지만 앞으론 ‘팬택계열=퀄컴이 투자한 회사’라는 꼬리표가 붙어 대외 신인도도 높아질 것이다. 윤두현 팬택 관리부문장(상무)은 “팬택계열의 미래에 투자해 준 퀄컴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퀄컴도 한국 IT 산업의 동반자라는 입지를 강화하고, 그동안 국내 휴대전화업체로부터 로열티만 받아가는 회사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어느 정도 불식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차영구 퀄컴코리아 사장은 “이번 투자로 팬택계열은 혁신적인 제품 개발을 위한 기반을 쌓을 것”이라며 “한국의 IT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팬택 채권금융회사들의 출자전환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박 부회장은 “재무구조 안정을 바탕으로 회사를 빨리 정상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팬택계열은 2분기(4∼6월) 매출 5150억 원, 영업이익 391억 원을 달성해 8분기 연속 흑자를 이어가고 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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