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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5월 28일 02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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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선진화는 지난해 초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핵심 정책과제다. 이에 따라 정부는 ‘민간이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은 민간에 넘기고, 남은 영역은 경영을 효율화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지난해부터 6차례에 걸쳐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을 내놨다. 최근에는 수시로 공기업 기관장 등이 참여하는 워크숍을 개최해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처음에 소극적이었던 공기업들도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한 뒤부터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경쟁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경영방식을 도입하고, 연공서열 순이던 인사, 임금제도를 고치면서 변화를 선도하는 공기업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임원들의 임금을 깎고, 청년 인턴을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등 세계적 경기침체 극복을 위한 사회적 노력에 적극 동참하는 공기업도 적지 않다.》
인사·임금·경영 등 변화 가능한 것은 뭐든 한다
세계적 경기침체 극복 노력에 한마음으로 동참
○ 새 경영방식 도입해 탈바꿈
| ‘공기업 선진화’ 기사목록 |
LG전자 부회장을 지낸 김쌍수 한국전력공사 사장은 지난해 8월 취임 직후 사내에 TDR팀을 만들었다. 문제를 완전히 파헤치고(Tear Down) 새로운 방법으로 재구성(Redesign)하는 TDR팀은 업무 효율성을 30% 이상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시범과제로 보고문서 간소화, 노후 변압기 교체기준 변경, 변전소 소형화 등을 추진해 1117억 원을 절감했고 올해는 133건의 TDR 과제를 진행하고 있다.
김 사장은 26개였던 사업본부를 13개 통합사업부로 통폐합하고 해외지사는 5곳에서 2곳으로, 물류센터는 37곳에서 14곳으로 줄이는 등 대대적인 조직개편도 단행했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LG전자 재직 시절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했던 경영혁신 기법 ‘6시그마’를 한전에도 도입했다.
한국전기안전공사는 올해 경영목표로 ‘1초 경영’을 선포했다. 업무처리 속도를 빠르게 해 효율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고객에게 1초라도 더 빠른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전기안전공사는 △경영혁신 △인재양성 △신성장동력 창출 △근무환경 개선 등을 1초 경영의 4대 추진 과제로 삼고 ‘1초 경영 추진 실무단’을 통해 선정한 혁신과제 197개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
○ ‘철밥통’은 잊어라…상시 퇴출 프로그램 가동
임직원들의 근로의욕을 높이고 인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인사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꾼 공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농어촌공사는 올해 초 부서장 41명 중 34명(83%)을 교체하면서 ‘희망 보직제’를 도입했다. 농어촌공사는 먼저 보직별로 지원자를 모집한 뒤 지원자의 인적사항을 해당 보직이 속해 있는 부서의 직원들에게 통보했다. 직원들이 지원자 중 누구와 함께 일하고 싶은지 선택하면 이사, 여성대표, 노동조합 대표 등 7명으로 구성된 보직심사위원회가 선택 결과를 반영해 인사이동을 결정했다. 박정환 농어촌공사 기획조정실장은 “인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청탁의 소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다”며 “마지막까지 보직을 받지 못한 간부들에게는 레드카드를 주고 3개월 동안 사회공헌활동을 담당하게 했다”고 말했다. 레드카드를 받은 간부가 3개월 동안 ‘개전의 정’을 보이지 않으면 퇴출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농수산물유통공사(aT)는 최근 인사에서 2급 직원 7명에게 1급 보직을 맡기고, 3급 직원 18명에게 2급의 업무를 맡기면서 능력, 성과 중심으로 인사를 운영한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희망보직 공모를 통해 배치하는 ‘잡 마켓’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 일자리 나누기 등 사회공헌에도 앞장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일자리 나누기 등 고통 분담에 나서는 공기업도 적지 않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올 초 106명을 조기 퇴직시키기로 결정한 뒤 노사합의로 임원은 1인당 750만 원, 직원은 1인당 140만 원씩을 갹출했다. 이렇게 마련한 56억 원은 퇴직자들의 이직을 지원하는 데 쓰였다. 이학수 수자원공사 인사팀장은 “정부의 구조조정 방침에 따르면서 경인운하 등 새로운 사업에 필요한 젊은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부가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최대한 성실히 설명했다”며 “퇴출 대상자들이 결정되자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이들을 돕기 위해 임금을 모으겠다고 나섰다”고 말했다.
수자원공사는 일자리 나누기를 위해 정원을 줄이면서도 신입사원은 예년 수준인 90명을 선발했고 청년인턴도 200명을 채용했다. 경제여건을 감안해 물 값도 5년 연속 동결했다.
대한주택공사는 3월 사내근로복지기금 40억 원을 투자해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주부 1000명을 채용했다. 원래 임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사용되는 돈을 일자리 나누기에 활용한 것. 주부들은 월 60만 원을 받으면서 영구임대주택 등에 거주하는 홀몸노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 등을 돕고 있다. 한국수출보험공사는 지난해 사장을 포함한 임원의 급여를 40% 삭감했고 여비규정을 개정해 임원 출장비도 깎았다. 경영진이 먼저 고통을 분담하자 팀장급 이상 직원들이 성과급을 자발적으로 반납했다. 공사는 이를 활용해 청년인턴 채용 규모를 20명에서 55명으로 늘렸다. 한전은 전력 그룹 공동으로 공기업 최대 규모인 1871명의 청년인턴을 채용할 예정이다. 한전은 또 중소기업의 경영난 극복을 위해 투자비를 조기에 집행하는 한편 중소기업들에 낮은 이자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