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엔고 희비, WBC결승 9회말 상황”

  • 입력 2009년 3월 27일 02시 58분


엔고따른 원화약세 효과에 안주땐 역공 당해

한국기업, 환율아닌 실력으로 절호기회 잡아야

꼭 같은 드라마나 영화를 보더라도 그 처지에 따라 감동이나 느낌은 다르게 마련이다. 한국의 주요 그룹들은 국민적 감동을 선사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경기를 보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재계 관계자들은 “정말 대단하고 뿌듯하다. 한국 기업들도 WBC 대표팀처럼 체격은 작지만 저력은 강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아쉬움을 남겼던 결승전을 보면서 엔고(엔화 가치 강세)로 수세에 몰린 일본 기업들을 압도하지 못한다면 ‘기회 뒤에 위기가 온다’는 경각심을 새삼 확인한 경우도 많았다.

○ “한국과 일본 기업의 상황과 흡사”

한국 대표팀은 9회말 공격에서 3-3 동점을 만들고 2사 1, 2루의 역전 기회를 잡았다.

LG그룹 관계자들은 “일본 주요 기업들은 엔고로 수출 경쟁력이 떨어진 반면 한국 기업은 고환율의 혜택을 받고 있는 상황과 비슷하게 여겨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남용 LG전자 부회장은 최근 사내(社內)방송에서 “(엔고에 시달리는) 일본 기업들은 인력을 줄이고 제조 라인을 멈추는 반면 우리(한국 기업)는 환율로 버티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도 26일 ‘위기에 직면한 일본 전자업계의 구조적 문제와 시사점’이란 보고서에서 “일본 기업들이 글로벌 경기 침체와 엔화 강세로 시장 주도권이 약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TV시장 1위였던 소니가 2위로, 액정표시장치(LCD) 1위였던 샤프가 5위로 추락했다는 것이다.

삼성 계열사의 한 고위 임원도 “한국 기업이 막강한 선진 기업들을 앞지를 기회는 많지 않다. 글로벌 경제위기와 엔고라는 특별한 상황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구 대표팀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지만 9회 말에서 전세를 뒤집지 못했고 10회 초 2점을 내주며 패배했다.

이에 대해 재계에서는 “‘포스트 엔고’ 상황의 악몽이 떠올랐다”는 반응이 많았다.

특히 LG전자 관계자들은 “‘환율 수혜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일본)이 1, 2년 후 살아 돌아오면 우리(한국)에겐 바로 위기다’라던 남 부회장의 경고가 실감났다”고 말했다.

일본 기업들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엔고 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한국 기업들의 상대적 경쟁력은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 ‘김인식 리더십’이 던진 시사점

삼성, LG, SK 등 주요 기업 관계자들은 한국과 일본의 짜릿한 승부 못지않게 김인식 감독의 리더십에서도 경영에 참고할 많은 시사점이 있다고 밝혔다.

삼성의 한 임원은 “10타수 1안타로 부진했던 추신수 선수가 준결승과 결승전에서 결정적인 홈런을 터뜨렸을 때 미래 신성장동력에 대한 꾸준한 투자와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확인했다”고 말했다.

SK그룹 측은 김 감독의 유연성과 ‘스피드 경영’에 특히 주목했다. 경기 때마다 타순을 바꾸고 발 빠른 선수들을 중용한 전략이 최태원 SK 회장이 강조해온 경영 방침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최 회장은 “경영환경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하고 스피드가 뒷받침돼야 기업경영도 성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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