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월요일 막아라” 재계 안간힘

  • 입력 2009년 2월 16일 02시 58분


글로벌 감원태풍에도 삼성 - LG “우린 없다”

“외환위기때 교훈” 해고 없이 위기극복 나서

예상보다 긴 침체… “버티기 언제까지” 고심

글로벌 경제위기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대규모 감원(減員) 바람이 불고 있지만 삼성 LG그룹 등 한국의 대표 기업들은 여전히 ‘감원 무풍지대’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 LG는 여러 차례 “인위적인 감원은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15일 재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고경영자(CEO)와 임원진은 언제 끝날지 모를 경제위기에 대한 위기감이 점점 깊어지는 반면 ‘일자리 위협’이 줄어든 직원들의 위기의식은 상대적으로 희박해져 삼성 LG의 내부 고민도 커져 가고 있다.

대량 해고를 상징하는 ‘피의 월요일’을 막기 위해 주요 그룹의 경영진들이 피 마르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 외환위기 때와 다른 전략을 선택한 삼성과 LG

“왜 한국 기업만 감원이 없느냐.” “(한국 기업은) 감원 없이도 정말 문제없느냐.”

이달 9일 열린 남용 LG전자 부회장의 기자간담회에서는 외신기자들의 이런 질문이 잇달았다. ‘왜 한국만 감원 무풍지대냐’는 것이다.

실제로 ‘감원 없는 위기 극복’을 선택한 한국 대표 기업들의 전략은 글로벌 대표 기업들과 분명히 다른 길이다.

세계 최고의 생산성을 자랑하는 일본의 도요타자동차조차도 최근 6000명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일본 12개 자동차업체에서 발표한 해고 인원만 모두 2만2900명 안팎에 이른다.

지난달 26일(월요일)에는 미국과 유럽의 주요 기업들이 총 7만 명이 넘는 대규모 인력 감축 계획을 발표해 ‘피의 월요일’이란 표현을 세계적으로 유행시킬 정도였다.

삼성 LG의 ‘인위적 감원 없는 위기 극복 전략’은 과거 외환위기 때와도 극명히 대비된다.

삼성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외환위기 때 국내 인력 5만8000명 중 30%, 해외 인력 2만5000명 중 40%를 감축했고 120여 개의 사업과 제품을 매각, 철수, 분사(分社)하는 방식으로 정리했다.

LG그룹도 외환위기 때 ‘53개 계열사를 32개로 축소하겠다’는 내용의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주채권은행과 체결해야 했다. 핵심 계열사인 LG전자도 기존 조직의 25%를 축소했다.

삼성과 LG 관계자들은 “갑자기 닥친 외환위기는 당시 회사를 존폐의 기로에 서게 했지만 그 후 기업 체질 개선이 상당히 이뤄진 만큼 이번 위기에서는 그런 ‘극약 처방’을 쓰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 ‘위기 온도 차’ 때문에 고민 깊어 가는 대기업들

재계 관계자들은 “외환위기는 ‘대기업의 감원으로 일자리가 사라지면 사회도 무너진다’는 뼈아픈 교훈을 한국 사회에 심어줬다”며 “삼성 LG 등의 ‘감원 없는 위기 극복’ 전략은 사회적 분위기와 현 정부의 고용 유지 의지 등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라고 말한다.

그러나 문제는 글로벌 경기 침체가 당초 예상보다 길어지고 수출 경쟁력의 버팀목인 환율 효과마저 서서히 약화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지금의 ‘감원 무풍지대’를 고수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삼성의 고위 임원은 “최근 인사로 적지 않은 임원이 일자리를 잃었고 살아남은 임원도 임금의 20%가 감봉되는 위기 상황이지만 직원들은 그런 위기감을 못 느끼는 것 같다”며 “감원 없이도 ‘건강한 위기의식’을 어떻게 불러일으키느냐가 최대 고민”이라고 말했다.

종이컵 안 쓰기, 사무용품 아껴 쓰기 같은 허리띠 졸라 매기 수준으로는 직원들의 ‘위기의식의 만성화’를 타개하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이 임원은 덧붙였다.

남 부회장도 “환율이 좋아서 (직원들이) 위기를 잘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환율 거품이 꺼지면 (인적) 구조조정이 필요한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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