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가 달라졌다

  • 입력 2008년 10월 8일 02시 54분


M&A 심사기준 ‘단순 시장점유율’서 ‘시장현실 인정’으로

일부선 소비자 피해 우려도

지난달 25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이베이의 G마켓 인수를 승인했다. 옥션을 보유한 이베이가 G마켓을 인수하면 온라인 장터(오픈 마켓) 시장점유율이 87.2%에 이른다.

업계에서는 “‘조건부’라고는 해도 시장 점유율이 90%에 가까운 인수합병(M&A)을 승인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최근 기업 M&A 심사에서 공정위가 시장점유율만을 주요한 기준으로 따지던 관행에서 벗어난 결정을 잇달아 내려 주목받고 있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3월 취임한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이 있다.

○ 시장 변화가능성이 중요

지난달 공정위는 홈플러스의 홈에버 인수에 대해 일부 점포의 상품가격을 전국 평균 이하로 유지하는 조건으로 허가했다.

공정거래법은 1위 업체의 시장점유율이 50% 이상이거나 상위 3개 업체의 점유율이 합쳐서 75% 이상이면 경쟁을 제한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이번 경우 시장점유율과 함께 구매전환율을 처음으로 조사했다.

홈플러스와 함께 홈에버 고객 3000명에게 홈에버가 영업을 중단하면 어디서 상품을 구입할지 물은 뒤 이를 감안해 가격이 오를 수 있는 점포 5곳에만 가격 유지 등 약한 강도의 시정조치를 내렸다.

이는 2006년 이마트의 월마트 인수 때 4, 5개 지점 매각을 명령했던 것에 비하면 공정위의 정책이 얼마나 변했는지 실감하게 한다.

○ 독과점 판단도 글로벌하게

백 위원장은 최근 강연에서 “과거에는 기업결합 심사에서 결합 후 경쟁제한적인 요인을 많이 고려했으나 이제는 시장의 판단을 중시한다”며 “시장을 획정하거나 경쟁제한성을 볼 때도 국내 시장이나 산업만을 보지 않고 글로벌 관점에서 볼 것”이라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백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대우조선해양, 하이닉스반도체, 현대건설 등 매각 대상 기업이 줄지어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주선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본부장은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이 국내외 경계 없이 팔린다면 시장을 세계 기준으로 보는 게 맞다”며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는 기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의 판결도 공정위의 변화를 끌어낸 원인 중 하나다. 이마트는 월마트 인수 때 점포 매각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소송을 걸었고, 법원은 지난달 초 공정위가 시장의 변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며 이마트의 손을 들어줬다.

○ 공정위의 변신은 무죄?

공정위의 변화가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일부에서는 정권이 바뀌었다고 공정위의 잣대가 바뀌면 신뢰를 잃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기업을 우선시하다 보면 소비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확대해석을 경계한다. 주순식 공정위 상임위원은 “정부의 기조가 부지불식간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그에 따라 공정위의 판단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며 “공정위는 시장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원래 친시장적인 기관”이라고 말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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