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자금 - 수출 - 실적 ‘삼면초가’

  • 입력 2008년 10월 1일 02시 57분


경기 위축에 환차손 겹쳐 실적 악화 우려

사업계획 바꾸고 달러 확보로 ‘기근’ 대비

키코 26개 업체 1032억 미결제 ‘도산 위기’

미국 하원이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7000억 달러(약 833조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구제금융법안을 부결하자 한국 산업계는 자금 경색과 대미(對美) 수출 둔화, 실적 악화 등에 대한 우려로 초비상이 걸렸다.

특히 30일 원-달러 환율이 장중 한때 달러당 1230원대로 치솟는 등 환율이 급등(원화가치는 급락)하면서 통화옵션 상품인 ‘키코(KIKO)’에 가입한 중소기업들은 심각한 위기감에 휩싸였다. 대기업들 역시 자금난이 가속화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이현석 대한상공회의소 조사1본부장은 “미국발 대형 금융위기의 불똥이 실물경제 악화로 옮겨 붙고 있다”고 분석했다.

원유 도입 대금을 미국 달러화로 결제하는 정유업계는 환율 급등에 따른 3분기(7∼9월) 실적 악화 우려로 노심초사하는 분위기였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제 마진 악화에 석유수요 감소까지 겹쳐 3분기 실적 전망이 좋지 않은데, 환율마저 폭등하면 사상 최대의 환차손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업계도 이번 구제금융법안 부결로 미국 내수(內需)경기가 위축되면 자동차 소비가 줄어 대미 수출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불안해했다. 이에 따라 경기 침체기에 상대적으로 잘 팔리는 소형차 판매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사업계획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

항공업계는 여행 심리 위축에 대비해 수요 부진 노선에 대한 구조조정에 나섰고, 조선업계는 선박금융의 불안으로 돈줄이 말라 선박 수주가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번 위기에 따른 직접적인 영향이 당장은 없더라도 상황이 더 악화될 것에 대비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포스코는 현금성 자산 중 일부를 달러로 교환해 금융시장의 ‘달러 기근’에 대비하고 있다. 또 환차손을 줄이기 위해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바꾸지 않고 있다가 이를 원료 수입 대금으로 지불하는 ‘내추럴 헤지’를 하고 있다.

10월부터 내년도 사업계획 수립에 들어가는 주요 기업들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며 답답해하는 표정이었다.

삼성전자 측은 “금융시장 전망 자체가 어려워 내년도 경영 환경 예측이 쉽지 않다”고 말했고, 효성그룹 측도 “환율 변동 폭이 너무 커서 내년도 사업계획을 세우는 데 애를 먹을 것 같다”고 말했다.

키코에 가입한 중소기업들은 월말인 이날 키코 계약 금액을 내야 하는 상황까지 닥치자 “이미 한계 상황을 넘어섰다”고 호소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키코에 가입한 26개 업체가 8월 말 현재 키코 대금 1032억 원을 결제하지 못해 도산 위기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업체의 실현손실은 1084억 원, 평가손실은 512억 원에 이른다.

지식경제부와 중소기업청은 중소기업의 자금난 악화에 대비해 △중소기업진흥공단의 회생특례자금 추가 지원 △신용보증기금 및 기술보증기금의 신용보증 확대 △벤처 출자 전담 펀드인 ‘모태펀드’의 조기 집행을 통해 창업·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확대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경부 당국자는 “이런 지원 대책에 대해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등 관계 기관과 협의하고 있다”며 “2일경 추가 지원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산업부 종합

정리=김유영 기자 ab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