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폭탄’ 환율 잡다 곳간 태울라

  • 입력 2008년 7월 10일 02시 59분


1달러=1026.5 → 1029.5 → 994. 5→ 1004.9…하루동안 35원 ‘출렁’

《외환당국이 외환시장에 이틀 연속 ‘달러 폭탄’을 집중 투하하면서 9일 원-달러 환율이 장중 한때 900원대로 내려갔다가 다시 1020원대 후반으로 오르는 등 급등과 급락을 반복했다. 시장에서는 당국이 의도한 대로 과도한 달러 매수 심리를 꺾는 데는성공했지만 무차별적 개입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고유가 등 환율 상승 요인이 여전한 상황에서 상승 추세를 뒤바꿔놓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국내 거시지표인 물가를 잡기 위해 대외변수인 환율카드를 남용하는 정책의 위험에 대한 우려도 많다. 경상수지 적자가 쌓이는데 환율을 억지로 끌어내리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낭비하다 결국 달러 지불불 능 사태로 치달은 1997년의 외환위기를 떠오르게 한다는 시각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때일수록 ‘환율은 시장에 맡긴다’는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 ‘도시락 폭탄’까지 동원 환율방어 의지 과시

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8일보다 달러당 27.8원 급락한 1004.90원으로 마감했다. 7∼9일 3일 동안 환율은 45.50원 내리면서 4월 30일(1002.60원) 이후 최저 수준을 보였다.

이날 오전 9시 개장 때 1026.50원이던 원-달러 환율은 낮은 가격에 달러를 사려는 수요가 늘면서 곧 1029.50원까지 올랐다. 하지만 “환율 안정 노력을 현 수준에서 그치지 않겠다”는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의 구두 개입과 함께 30억∼40억 달러 규모의 달러가 투하되면서 상황은 급반전했다.

개입 물량 가운데 10억 달러는 점심시간에 쏟아지면서 ‘도시락 폭탄’이라는 말도 나왔고 식사하러 갔던 딜러들은 황급히 딜링 룸으로 돌아왔다.

딜러들이 대거 손절매(損切賣·손해를 줄이기 위해 사들인 가격 이하로 파는 것)에 나서면서 환율은 장중 한때 994.50원까지 급락했다. 이날 하루 중 환율 변동 폭은 35원이나 됐다.

시장에서는 당국이 시장에 대한 무차별 폭격으로 기선 제압에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은행 트레이딩부 노상칠 팀장은 “시장에서 투기 심리는 거의 사라진 것 같다”면서 “정부가 세 자릿수 환율(900원대)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달러 남용” 일부선 외환위기 재발 가능성 우려

외환 당국이 단기적으로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는 했지만 짧은 시간 안에 구두 개입과 실탄 개입을 반복하자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잦은 개입은 시장을 길들여 자생력을 잃게 할 수 있는 데다, 유가 등 환율 상승 요인이 잠재해 있는 상황에서 자칫하면 막대한 개입 비용만 날리고 기대한 효과를 얻지 못하는 상황으로 빠져들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JP모간 임지원 이코노미스트는 “유가 상승 가능성이 상존해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개입으로 환율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안심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달러 실탄을 남발할 경우 외환보유액을 잠식하는 국부(國富) 훼손 우려도 적지 않다. 실제로 정부는 7월 들어 3일 동안에만 100억 달러(시장 추정) 안팎의 달러를 시장에 쏟아 부었다.

더욱 본질적인 문제 제기는 환율은 대외 변수로서 대외지표인 경상수지 균형을 겨냥해야 하며, 내부 거시지표인 경기 진작이나 물가안정의 수단으로 남용하면 부작용이 커진다는 것. 당국은 현 정부 출범 초기에는 수출을 도와 경기를 자극하기 위해 환율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렸고, 고유가로 물가 불안정이 심각해지자 정책을 급선회해 환율을 억지로 끌어내리고 있다. 정책이 춤을 추면서 시장도 등락을 반복했다

전문가들은 성장이나 물가는 대내 변수인 재정 및 통화정책을 통해 정책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환율 개입은 정부가 이상 급등락을 막는 ‘스무싱 오퍼레이션(smoothing operation)’ 수준에 그쳐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연세대 김정식 교수는 “외채 규모를 고려할 때 현재의 외환보유액(6월 말 현재 2581억 달러)은 넉넉하지 않다. 과도한 개입이 지속되면 외환보유액을 소진해 외환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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