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어보지 못한’ 난국… ‘위기 마지노선’ 대폭 앞당겨

  • 입력 2008년 7월 9일 03시 23분


고유가 충격으로 물가-경상수지-성장률 악화일로

에너지 절약 대책, 물가는 잡지만 소비위축 우려도

오일쇼크에 취약 ‘경제 체질’ 중장기적으로 바꿔야

《이명박 대통령이 8일 국무회의에서 현 상황을 ‘위기’라고 규정하고 2단계 위기관리계획을 조기 시행토록 한 것은 한국 경제가 과거 한 번도 겪지 못한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고 봤기 때문이다. 물가 급등, 경상수지 적자 확대, 경제성장률 저하 등 이른바 ‘트리플 악재’가 모두 고유가에 원인이 있는 만큼 에너지 소비구조를 바꾸지 않고선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 트리플 악재의 출발점

고유가는 원유 및 석유제품 수입가격을 자극한 뒤 국내 물가 상승 및 경상수지 적자 폭을 키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내수가 위축돼 전반적인 경기가 둔화한다. 고유가가 악순환 고리의 출발점인 셈이다.

한국은 이미 고유가 충격으로 물가 경상수지 성장률과 관련된 모든 거시경제지표에서 하강 국면으로 접어든 상황이다.

6월 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5.5% 올라 1998년 11월(6.8%) 이후 가장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이달 들어 원유가격은 두바이유 기준으로 배럴당 10달러가량 올랐다. 원유가 상승분이 시차를 두고 서서히 국내 최종소비재 물가로 전이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7월 이후 물가 상승 폭이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물가가 뛰는데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마저 부진해 지난달 무역수지는 2억8400만 달러의 적자를 냈다. 이에 따라 기획재정부는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에서 서비스수지 소득수지 등을 포함한 경상수지 적자 폭이 당초 예상한 70억 달러보다 많은 1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수정했다.

한국의 성장률과 관련해선 5월 초만 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5%대의 전망치를 유지했지만 지금은 모든 연구기관이 전망치를 4%대로 내린 상태다.

고유가뿐 아니라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적인 신용위기가 여전히 진행 중이란 점도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8일 미국계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는 “미국의 재무회계 기준이 강화되면 모기지회사인 패니매와 프레디맥이 총 750억 달러의 추가 자본 조달이 필요하다”고 밝혀 충격을 주기도 했다.

○ 물가에 긍정적, 경기에 부정적인 대책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이번 2단계 위기관리계획은 물가와 경상수지에는 긍정적인 반면 경기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우선 승용차 요일제 시행으로 자동차 운행이 크게 줄면 휘발유 경유 액화석유가스(LPG) 등 석유제품 수요가 줄어 가격이 다소 떨어질 수 있다.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월에 비해 0.6%포인트 올랐는데 이 중 0.58%포인트가 석유제품 가격 상승 때문일 정도였다.

석유제품 소비가 줄면 점진적으로 휘발유 등을 해외에서 들여오는 물량이 감소해 경상수지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반면 에너지 절약이 사회 전반의 소비 위축을 불러와 경기가 더 빠른 속도로 하강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강만수 재정부 장관은 “(이번 대책으로) 물가 안정과 경기 활성화라는 목표가 상충할 수 있는 만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선에서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대책과 관련해 일각에선 목욕탕, 골프장, 유흥음식점 등의 수입이 줄어드는 등 민간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는 대책을 너무 서두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6일 1단계 고유가 위기관리계획 발표 당시 “민간에 대한 에너지 절약조치는 에너지 수급에 중대한 차질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시행이 가능한 만큼 민간 부문은 에너지 절약을 권장하겠다”고 했지만 이틀 만에 민간에도 에너지 절약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 에너지 해외 의존도 95%… 개선 시급

한국은 에너지 해외 의존도가 95%에 이르는 데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 산업구조여서 고유가에 따른 충격이 다른 나라에 비해 크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유가가 5달러 오르면 한국은 제조원가가 0.56% 오르지만 OECD 회원국은 0.2% 정도만 오른다.

이에 따라 민간 전문가들은 유가 급등으로 촉발된 경제 위기를 타개하려면 단기적으로 물가 안정과 에너지 절약에 나서는 한편 중장기적으로 에너지 효율적인 경제로 체질을 바꾸고 대체 에너지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해외자원 확보를 위해 한국석유공사를 대형화해 대형 자원개발 기업을 키우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과거에도 이런 중장기 대책의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지속적으로 추진되지 못하고 유가가 조금만 떨어지면 흐지부지됐다는 점이다. 1970, 80년대에 ‘오일쇼크’를 경험하고도 여전히 유가 급등에 취약한 경제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다.

이지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국처럼 민간에 에너지 효율 목표치를 주고 이 목표치를 달성한 기업이 달성하지 못한 기업에 탄소배출권 같은 권리를 팔 수 있도록 하는 식의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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