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발전이 곧 사원복지 절감했죠”

  • 입력 2008년 6월 7일 02시 57분


노조 “파업은 그만”… 회사엔 인센티브 요청

경영 악화되자 체육대회 안열고 공장 돌려

5일 경북 포항시 남구 괴동동의 심팩ANC 공장.

합금철 생산업체인 이 회사의 공장에 들어서자 후끈 열기를 내뿜으며 시뻘겋게 타오르고 있는 전기로가 먼저 눈에 띄었다. 전기로에 망간광석, 백운석, 규석 등을 넣어 녹이면 합금철이 만들어진다. 합금철은 철강 제품을 만들 때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기초재료다.

공장 직원들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망간을 녹일 때 나오는 유해가스와 미세먼지를 막기 위해서다.

먼지를 흡수하기 위해 설치한 대형 집진(集塵) 파이프라인은 대부분 15년 전에 설치해 녹이 많이 슬어 있었지만 유독 1개 라인만 새 시설이었다. 올해 초 약 10년 만에 처음 설비투자를 하면서 교체한 시설이라고 했다.

한때 포항지역의 대표적인 강성노조의 하나로 꼽혔던 심팩ANC 노조는 올해 초 80여 명 노조원의 전원 찬성으로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회사의 ‘경영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면서 투자도 하고, 실적도 좋아졌다.

○ 회사…‘10년 만의 설비투자’

심팩ANC의 포항공장은 1979년에 설립한 한합산업이 모태다. 한합산업은 당시 과점(寡占)체제의 혜택을 누리면서 꾸준히 이익을 냈지만 1997년 외환위기 때 과도한 설비투자로 자금상황이 급격히 나빠졌고 결국 그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노조는 이때부터 2006년까지 사실상 매년 파업을 벌이면서 회사 측과 극한 대립을 이어 갔다.

하지만 2006년 6월 프레스제조업체인 심팩이 한합산업을 인수하고 사명(社名)을 심팩ANC로 바꾸면서 회사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상일 심팩ANC 사장은 “2006년 대표이사 부임 당시 직원 사기가 크게 떨어진 데다 강성 노조로 회사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비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며 “‘할 수 있다’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10년 만에 대대적인 설비투자를 했다”고 말했다.

회사는 올해 초 22억 원을 들여 집진설비 1개를 최신식으로 바꾸고, 중앙제어실 기계도 새로 교체했다. 경영상황도 노조에 투명하게 밝히는 등 노조를 상생경영 파트너로 삼았다.

○ 노조…8년 만에 민주노총 탈퇴

전체 직원 170명 중 80여 명으로 구성된 노조도 회사의 상생 노력에 화답했다.

올해 1월 말 심팩ANC 노조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탈퇴 찬반투표를 해서 노조원 전원의 찬성으로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임희석 심팩ANC 노조위원장은 “힘없는 중소기업 노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00년 민주노총에 가입했지만 오히려 노조원의 복지는 더 나빠졌다”며 “각종 정치적 행사에 불려 다녔고, 심팩ANC 노조원보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판단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고 말했다.

노조는 심팩에 인수된 2006년 “회사 경영이 나쁘면 우리도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며 “대신 수익이 나면 인센티브를 줄 것”을 회사 측에 요청했다.

실제 노조는 올해 초 공장에서 화재가 나자 매년 여는 봄 체육대회를 포기했다. 체육대회를 열면 회사 시설을 하루 놀려야 하기 때문이다.

노사 신뢰의 성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지난해 노사는 임금협상을 한 달 만에 끝냈다. 통상 9개월 정도 걸리던 협상이었다.

올해 1분기(1∼3월)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376억 원, 113억 원으로 모두 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였다.

임 위원장은 “지난해 포항에서 꽤 많은 기업이 민주노총을 탈퇴했는데, 지금도 그런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며 “사실상 매년 계속되던 파업으로 ‘어쩌면 회사 문을 닫을 수 있겠구나’ 하고 느낀 이후 ‘회사 발전이 곧 사원복지’임을 절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포항=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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