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게 전쟁” 경영 최일선 야전사령관의 ‘비즈니스 25시’

  • 입력 2008년 6월 4일 03시 01분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연일 치솟고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의 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물가는 뛰어오르고 성장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그러나 ‘기업 전사(戰士)’들은 아무리 어려운 여건 아래서도 손을 놓지 않는다. 바쁘게 움직이는 대기업 ‘야전사령관’ 2명을 만나봤다.》


“안개속 환율… 실적 전망 먹구름”

윤병은 대우인터내셔널 경영기획총괄 부사장

2일 오전 8시 반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우인터내셔널 본사.

팀장급 이상 50여 명이 참석하는 ‘경영전략 회의’에서 각 본부가 주간 실적을 보고했다. 대부분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5월 매출은 월간 기준 창사 이래 최대였다.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의 영향이 컸다.

그러나 강영원 대우인터내셔널 사장 옆에 앉아 있던 윤병은 경영기획총괄 부사장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았다.

윤 부사장은 “환율이 오르면 단기적으로 매출이 7∼8% 늘어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수출 대상국의 시장 규모가 작아질 수 있다”며 “하반기(7∼12월) 환율을 예상할 수 없어 실적을 낙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전 11시. 윤 부사장은 회의가 끝난 후 집무실에서 이달 20일 시작되는 대륙별 현지 회의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그는 특히 미주법인 회의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에 따른 경기 침체와 약(弱)달러 영향으로 미주법인의 매출이 10%가량 줄어 대책을 마련하는 게 주요 과제의 하나다.

그는 “미국시장 확대를 위해 3일 경제5단체가 주관하는 18대 국회의원들과의 상견례에 참석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후 3시. 윤 부사장은 본부별 실적을 다시 점검하면서 오만 가스전에서 들어온 배당금을 확인했다. 오만 가스전에서 나오는 배당금은 지난해 1000만 달러(약 103억 원)에서 올해 1600만 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윤 부사장은 “자원개발 사업이야말로 고유가 시대에 효자”라고 강조했다.

그는 짬이 날 때마다 ‘기후변화의 경제학’이라는 책을 읽었다. 신규사업 개발 태스크포스팀이 진행하고 있는 탄소배출권 사업에 대한 배경지식을 쌓기 위해서다. 이 역시 고유가 시대에 각광받을 수 있는 사업이라는 설명이다.

오후 7시. 거래처와의 약속을 위해 사무실을 나서며 윤 부사장은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라며 “대내외로 어려운 여건을 역으로 활용해 ‘종합상사=수출 첨병’ 역할을 해내겠다”고 말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 “매일 아침 유가보면 숨이 막혀” ▼

이영환 GS칼텍스 원유제품부문장(상무)

“아침에 눈을 뜨기가 겁이 납니다.”

이영환 GS칼텍스 원유제품부문장(상무)은 오전 6시 반 기상하자마자 휴대전화를 보고 긴 한숨을 내쉬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싱가포르와 런던의 현지법인이 보내준 유가 정보를 보면 “아침부터 숨이 턱턱 막힌다”는 것이다.

이 상무는 3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타워 본사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내일은 좀 낫겠지’ 하고 잠들었다가 실망을 반복하는 일이 벌써 5∼6개월째”라며 답답한 심정을 털어놨다.

이 상무는 해외에서 원유를 수입해 석유제품을 만들어 파는 일을 총괄하는 임원이다. 조금이라도 싼 가격의 원유를 수입하기 위해 매일같이 책상 위에 수북이 쌓아놓은 세계 200여 유종의 가격정보 서류에 파묻혀 산다.

“사흘에 한 번씩 200만 배럴의 원유를 수입하는데, 60%는 월평균 유가에 연동되는 장기계약 물량입니다. 나머지를 현물시장에서 바로 구입(스폿거래)하는데 이 물량을 조금이라도 싸게 조달해야지요.”

요즘 같은 고유가 상황에서는 하루 가격 변동폭이 5달러도 넘기 때문에 순간의 판단에 따라 수백만 달러를 잃을 수도 있다. 여기에다 최근 미국 달러화 대비 거의 유일하게 가치가 떨어진 원화로 인해 원유 구매부담이 늘어난 점도 걱정거리다.

그는 인터뷰 도중에도 해외 현지법인에서 시시각각 보내오는 가격 정보 메시지를 체크하고 업무 지시를 내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 상무가 가장 답답해하는 것은 이 같은 ‘피 말리는 유가와의 싸움’이 언제 끝날지 종잡을 수 없다는 점이다.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떨어지는 것이 상식이지만 지금은 세계 각국의 원유 수요가 감소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고, 산유국도 생산량을 늘릴 여유가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상무는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 때와 지금은 상황이 너무 다르다”면서 “지금도 유가가 최고점을 찍었다고 보기 힘들고, 앞으로도 배럴당 100∼120달러대의 고유가가 상당 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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