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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25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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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파트 주민 C씨는 얼마 전까지 관리소장을 맡았다. 주인 없는 집들 탓에 온갖 문제가 생기자 주민이 직접 나선 것.
그는 "관리비를 낼 입주민이 부족해 전기료, 수도료 등 수천만 원이 연체돼 있다"며 "전기와 수도를 끊겠다는 통보까지 받았지만 해결책이 없다"고 울상을 지었다.
건설업계는 공사가 끝났는데도 팔리지 않은 '준공후 미분양' 아파트를 일반 미분양 아파트와 구별해서 '악성 미분양' 아파트라고 부른다. 이런 악성 미분양 아파트가 지방에 넘쳐나고 있다. 준공 이후까지 한 채도 안 팔린 아파트가 있는가 하면, 분양을 포기하고 전세 입주자로 새 집을 채우려는 곳도 늘고 있다.
25일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2월말 기준으로 전국의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는 1만9948채다. 1년 남짓 새 50% 늘어난 규모로 이 가운데 99%인 1만8770채가 지방 아파트다.
분양대행업체 사장 L씨는 "영업에 악영향을 줄까봐 건설업체가 공개하지 않은 미분양까지 포함하면 실제 준공 후 미분양은 정부 통계보다 50% 이상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파트는 완공됐는데 분양률은 '0'
24일 밤 부산 남구 B아파트는 92채 가운데 불이 켜진 곳이 한 집도 없었다. 지난해 완공됐지만 한 채도 안 팔렸기 때문이다. '유령 아파트'라는 말까지 나온다.
아무도 살지 않은 아파트라 상가도 텅 비어 있다. 3.3㎡당 700만 원인 분양가는 인근 시세에 비해 높지도 않다. 지하철 역세권이고 수요층이 두터운 110㎡ 단일 면적이다. 그런데도 건설업체는 분양가를 내려 다시 분양해야할 처지다.
인근 K아파트. 이 곳도 지난해 완공됐지만 700여 채 중 20% 남짓만 입주했다. 주민 P씨는 "단지 내에서 사람 구경을 하기 힘들다"며 혀를 찼다.
맞은 편 D아파트는 주변 시세보다 3.3㎡당 200만 원 정도 분양가를 내렸지만 찾는 사람이 없다. 분양사무소 관계자는 "설명할 것도 없고 공황 상태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부산시에 따르면 4월말 기준 미분양 아파트는 1만3325채. 이 가운데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는 3145채다.
S건설 관계자는 "과잉공급이 미분양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사 중인 아파트 가운데 1만2000여 채가 미분양 상태여서 올 연말이면 준공 후 미분양이 지금의 두 배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준공 후 미분양, "정부 통계의 2~3배"
24일 밤 10시 광주 북부의 신흥 주거지인 신창지구. 완공한지 1년이 지난 단지들이 많지만 미분양 탓에 불이 켜진 집보다 꺼진 집이 더 많았다.
같은 시간 충남 천안시 용곡동의 전경도 비슷했다. 드문드문 빛이 새어나오는 아파트 아래에는 '분양 상담 문의'라는 플래카드만 잔뜩 걸려 있다.
아산신도시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더니 운전기사가 대뜸 "사람은 없는데 아파트만 지으면 뭘 해. 그 많은 신도시에 누가 들어와 살 건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아산신도시 '진'공인중개사무소 문미영 실장은 "이미 준공한 미분양 단지가 차라리 형편이 낫다"며 "지금 건설중이면서 분양을 진행하는 아파트는 준공한 곳보다 미분양이 더 많다"고 말했다.
현지 부동산업계는 "정부 통계를 믿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국토부에 따르면 2월말 기준으로 광주와 대구의 준공 후 미분양은 1078채와 974채다. 그러나 중개업계는 실제 준공 후 미분양을 정부 통계의 2~3배로 보고 있다.
D건설 관계자는 "시공사가 시행사로부터 공사비 대신 아파트로 떠안은 물량 등 드러나지 않는 미분양이 많다"며 "나쁜 소문이 나지 않도록 미분양 물량을 줄여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분양 포기하고 전세로 전환
대구 달서구 성당동 S아파트. 3000채를 넘는 단지 곳곳에 '꾸며놓은 집' 등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맡으려는 플래카드가 보인다. 그러나 입주가 임박한 여느 아파트와 달리 인적은 드물다. 중개업계에 따르면 일반 분양분의 80% 이상이 미분양으로 남았다.
시공사는 분양을 포기하는 대신 전세입주자로 빈 집을 채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런 아파트가 대구에만 3곳이다.
부동산114 이진우 대구경북지사장은 "수요자들이 집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새 아파트를 분양받거나 기존 아파트를 살 사람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매매가격이 전세금의 90%에 육박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대구 수성구 C아파트 90㎡ 시세는 1억1000만 원. 급매물로 내놓아도 살 사람이 없다. 그러나 전세로는 9500만 원을 주고서도 구하기 어렵다.
지역 중개업계는 악성 미분양의 원인으로 '면적의 수급 불균형'을 지적한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대구지역 미분양아파트 1만6232채 가운데 69%인 1만1200채가 전용면적 85㎡ 이상 중대형 아파트다.
2004~2005년 청약 열풍을 타고 건설업체들이 중대형 아파트만 잔뜩 공급했다가 낭패를 당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준공 후 미분양, '눈덩이' 증가 우려
회사원 김모씨(40·대구 수성구)는 최근 무주택자가 됐다. 입주할 아파트의 시세는 분양가(5억2500만 원)에 비해 1억 원 남짓 떨어졌다. 잔금 등을 마련키 위해 살던 집을 팔려고 보니 기존 집값도 1년 새 1억 원 하락했다. 그는 "살던 집을 싸게 팔고 입주 예정인 아파트는 해약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당분간 집을 살 생각이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미분양 아파트가 어떻게 팔리겠나."고 말했다.
이처럼 분양심리가 극도로 냉각되면서 현재 공사 중인 미분양 아파트(2월말 10만9704채) 가운데 상당수가 '악성 미분양'이 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부동산정보업체 관계자는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공사 중인 미분양 단지들이 악성 미분양으로 남게 되면 경제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윤희각기자 to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