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자금 의혹’ 공방

  • 입력 2007년 11월 27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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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변호사 “엔지니어링-항공 2조6000억 분식”

삼성“분식 액수가 매출보다 더 많다니”

김용철 변호사는 26일 기자회견에서 삼성그룹의 비자금 조성과 분식회계, 미술품 구매, 인맥 관리,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재산 관리 등 전방위 의혹을 제기했다.

김 변호사의 의혹 제기에 대해 삼성그룹은 즉각 반박 자료를 냈으며 법적대응을 하겠다는 방침을 처음으로 밝혔다.

이날 ‘삼성 비자금 의혹’ 등을 수사할 검찰 특별수사·감찰본부(특본)는 사건의 핵심 관련자들을 출국금지하는 등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박한철 특본 본부장은 “기자회견에서 나온 내용은 다 수사대상이 된다고 보면 된다”며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나 김 변호사의 기자회견과 관련해서 언론이 보도했던 것 중 구체적인 자료가 있는 것부터 법리를 검토해서 가능성 있는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비자금 ‘조성됐다’ vs ‘아니다’=김 변호사는 이날 “삼성전관(현 삼성SDI)이 삼성물산 해외 지점과 맺은 합의서(메모랜덤)”라며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런던 지점의 경우 신용장 개설 때 실제 물건 가격의 20%를 가산한 뒤 “삼성물산 이익률 1%를 제외한 19%에 대한 사후 관리는 상호 협의 처리한다”고 돼 있다. 김 변호사는 이 19%가 바로 비자금으로 조성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삼성 측은 “김 변호사가 비자금 조성 증거라고 제시한 메모랜덤은 13년 전인 1994년에 작성된 서류로 곧바로 진위를 확인하기 어렵다”며 “당시 서류에 서명한 것으로 돼 있는 전현직 임직원들은 ‘비자금 조성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고 해명했다.


촬영 : 신세기 기자

▽이 회장 일가가 비자금으로 고가 미술품 구입?=김 변호사는 이 회장의 아내인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등 삼성가(家)의 여성들이 미술품을 해외에서 구매하면서 약 600억 원을 송금했는데 이 자금이 비자금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 관장 등이 구입한 미술품 중에는 800만 달러 상당의 프랭크 스텔라의 ‘베들레헴 병원’, 716만 달러 상당의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등 고가의 작품이 포함돼 있었다고 김 변호사는 주장했다.

그는 이어 “재무팀에서 비자금을 운용하고 (이 회장의) 가족 중에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심부름을 보냈다”면서 “‘로비 대상 리스트’는 수사 과정에서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삼성 측은 “미술품을 미술관에서 구입할 때는 미술관 자금으로, 홍 관장이 개인적으로 구입할 때는 개인 자금으로 구입하고 있다”면서 “리움미술관과 홍 관장은 모두 서미갤러리에서 ‘베들레헴 병원’이나 ‘행복한 눈물’을 구입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7조 원대 분식회계 논란=김 변호사가 주장한 삼성그룹 계열사 분식회계 규모는 2000년 기준으로 총 7조2000억 원. 삼성중공업 2조 원, 삼성항공 1조6000억 원, 삼성물산 2조 원, 삼성엔지니어링 1조 원, 제일모직 6000억 원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삼성중공업은 분식 규모가 너무 커서 거제 앞바다에 배가 없는데도 건조 중인 배가 수십 척 떠 있는 것으로 꾸몄다” “분식회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삼성항공이 삼성전자에 납품한 물건을 제값보다 올려 주는 방식을 사용해 1년에 400억 원 정도 지원했다”는 등 구체적인 분식회계 방법을 제시했다.

하지만 삼성 측은 “2000년 당시 삼성중공업 매출은 3조5800억 원, 삼성항공은 1조4200억 원, 삼성엔지니어링은 9800억 원, 제일모직은 1조6600억 원에 불과했으며 삼성물산만 40조6400억 원이었다”며 “김 변호사의 주장대로라면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항공은 분식 규모가 매출액보다 더 크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삼성 측은 또 “당시 삼성전자는 삼성항공으로부터 총 850억 원어치를 구매했는데 400억 원을 지원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주장이다”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또 분식회계가 적발될 것을 우려해 삼성 측이 부산지방법원에 보관 중인 삼성자동차 법정관리기록 서류 일부를 빼내 불태웠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삼성자동차 관련 법원 서류를 소각한 사실이 없으며, 삼성은 적법한 절차를 거쳐 르노에 삼성자동차를 매각했다”고 말했다.

부산지법 관계자도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제출한 서류 가운데 없어진 서류가 없다”며 “당시 직원을 불러서 확인하겠지만 상식적으로 기업이 분식회계 한 내용이 남아 있는 자료를 법원에 낸다는 건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이 회장 일가 차명 재산?=김 변호사는 삼성 임직원들이 이 회장 일가의 차명계좌와 부동산 등을 보유하고 있다며 “지승림 전 부사장이 삼성생명 주식을 차명으로 갖고 있음을 시인한 사실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지 전 부사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나는 삼성생명 주식을 단 한 주도 가진 적이 없다. 삼성생명 주주 명부를 확인하면 알 수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한편 삼성 측은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사건 수사와 관련해 삼성그룹이 법률 비용 수십억 원을 김&장 법률사무소에 자문료 형식으로 지급했다는 김 변호사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지급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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