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40대]이진방 대한해운 회장

  • 입력 2007년 8월 1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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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도 하고 경영도 해 봤소만 산 높으면 골 깊어 쉰 즈음 얻은 교훈”

이진방(59·사진) 대한해운 회장의 40대 시절은 다소 특이하 다.

절반은 삼성물산과 삼성코닝에서 ‘월급쟁이’로, 나머지 절반은 부친이 창업한 대한해운에 들어와 사실상의 ‘오너’로 보냈다.

7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 대한해운 집무실에서 만난 이 회장은 “샐러리맨으로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어딜 가건 ‘창업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쫓아다녔을 것”이라며 “조직에서의 경험이 경영활동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이 회장의 아들 2명도 각각 증권사와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 경영에 약이 된 월급쟁이 생활

한국 나이로 40세였던 1987년, 그는 삼성물산에서 북미 지역 섬유 수출을 맡는 ‘고참 부장’이었다. “당시만 해도 수출이 국시(國是)였던 시절이니 해외 바이어가 한국에 오면 비위를 맞추기 위해 별짓을 다했지요. 바이어는 갑, 저희는 을이니까요.”

하지만 어려워도 부친의 회사에 발을 들여놓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당시 대한해운은 규모도 작았고 부친 역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삼성물산의 사장이 되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생활도 여느 사원과 다름없이 했다.

“부장은 ‘회사의 허리’지요. 부하 직원을 거느리면서 상사를 모시는 ‘낀 세대’라고나 할까요. 돌이켜보면 부하 직원보다는 상사에게 잘못했던 게 아쉬워요.”

이 회장은 20, 30대 시절 해외에서 선박부터 조미료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다양한 물건을 팔면서 고생한 경험이 남달라 부하 직원에게는 친절한 상사였지만, 정작 자신의 상사에게는 무뚝뚝한 부하 직원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조직 생활을 해 보니 “상사에 대한 아부도 기술”이라며 “무능력한 직원이 아부하면 보기 싫지만, 일 잘하면서 윗사람에게 깍듯한 직원은 그렇게 보기 좋을 수 없다”고 했다.

○ “회사는 개인이 아니라 조직이 움직여”

이 회장은 삼성코닝 이사를 끝으로 1992년 부친의 권유를 받고 대한해운에 입사했다.

당시 대한해운의 전체 직원은 고작 300여 명. 그가 삼성에서 거느린 직원 수에도 못 미쳤다. 하지만 조직에서 배웠던 경험은 대한해운에서 빛을 냈다.

“회사는 개인이 아니라 조직이 움직이는 겁니다. 사장 혼자 업무를 쥐지 않고 직원들에게 권한을 많이 줬습니다. 경쟁사에 비해 의사 결정을 빨리해 공격경영의 토대를 닦을 수 있었지요.”

실제로 이 회장은 대기업과 계약을 하고 해당 기업의 물건을 날라 주는 전용선 위주의 수익구조에서 탈피하고 선박에 과감하게 투자해 부정기선의 비중을 늘렸다.

그는 삼성에서 빨리 승진하고, 빨리 퇴직하는 차가운 문화도 경험했다. 대한해운에서는 직원들이 가급적이면 오래 함께 일하는 풍토를 만들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투자 많이 할 땐 예방주사 필요”

대한해운에서의 생활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1994년부터 저리로 1억 달러를 차입해 선박을 사들인 게 화근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로 달러당 원화 환율이 급등하면서(원화 가치는 하락) 원리금은 사정없이 불어났다.

“내가 들어와서 회사를 망치는구나 싶었지요. 부친뿐 아니라 직원들을 볼 낯이 없어 1년 동안 발을 뻗고 자지 못할 정도였어요.”

이 회장은 자식 같은 선박 4척과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에 사옥을 지으려던 땅도 팔고, 인력을 정리해 겨우 위기를 넘겼다.

당시 이 회장은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는 쓰라린 교훈을 얻었다.

“사업이 크려면 수익을 다각화하는 게 필요하지만 투자를 많이 해도 ‘예방주사’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잘나갈 때 조심하라는 것이지요.”

최근 대한해운 주가가 오르는 데 대해서도 이 회장은 “너무 올라서 부담스럽다”며 “나중에 떨어지면 골치가 아프다”는 농담을 건넸다. 언젠가는 불황이 올 수도 있으니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진방 대한해운 회장은...

1967년 경복고 졸업

1971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1974년 서울대 경영대학원 졸업

1971년 삼성물산 입사

1989년 삼성코닝 이사

1992년 대한해운 이사

2007년 대한해운 대표이사 회장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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