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과장님’ 10년새 15배로… 女 승진장벽 무너진다

  • 입력 2007년 6월 2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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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회현동 LG CNS 본사에서 중간 관리자와 임원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이곳의 과장급 여성 비율은 올해 15% 정도로 비교적 많은 편이다. 사진 제공 LG CNS
서울 중구 회현동 LG CNS 본사에서 중간 관리자와 임원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이곳의 과장급 여성 비율은 올해 15% 정도로 비교적 많은 편이다. 사진 제공 LG CNS
외환은행 직원들은 올해 2월 상반기 인사 결과가 발표되자 깜짝 놀랐다. 과장 승진자 114명 가운데 여성이 40.4%인 46명이나 됐다.

과장 승진자의 여성 비율이 18%였던 2005년과 비교하면 불과 2년 만에 2배를 넘었다.

대체로 보수적인 분위기인 금융계에서 여성이 이처럼 한꺼번에 많이 승진한 것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SK㈜ 본사는 2002년만 해도 과장급 369명 가운데 여성은 3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해 현재 여성 과장은 382명 가운데 20명으로 늘었다. 석유화학업체는 업종 특성상 여성 인력이 적은 데다 이 회사에 대졸 여성이 입사한 것도 올해가 겨우 9년째다.

이 회사 관계자는 “과장 부장 등 여성 중간 관리자의 진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올 5월로 전체 여성 취업자가 1000만 명을 넘었다. 특히 여성 직장인은 양적으로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주요 기업에서 과장 차장 부장 등 중간 관리직에 전진 배치되고 있다.

이들의 약진은 한국의 전반적인 직장 문화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10년 새 0.7%→10.2%로

노동부가 지난해 근로자 1000명 이상 기업 540여 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2006년도 근로자 현황’에 따르면 인사권과 결정권을 가진 과장 이상 관리자급의 여성 비율은 10.2%였다.

10년 전인 1996년 50대 그룹 586개 기업의 과장급 이상 관리자는 11만 명 중 여성은 729명으로 0.7%에 그쳤다. 이 기간에 여성 관리자 비율이 약 15배로 늘어난 셈이다.

성균관대 경영학부 차동욱 교수는 “여성 취업자 1000만 명 시대라지만 하위직은 그 수가 아무리 많아도 조직에 미치는 영향력이 작다. 생산성이 높은 중간 관리직에 여성이 본격 진출한다는 것은 이른바 ‘유리천장’이 깨지기 시작한 구체적 신호”라며 “여성들이 고위직으로 진출하는 건 이제 시간문제”라고 강조했다.

과거 여성의 고위직 발탁 인사는 대부분 ‘홍보용’이었다. 하지만 이제 기업들은 여성을 굳이 발탁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한다.

국민은행 김덕수 인사부장은 “여성 관리자가 워낙 없다 보니 한두 명씩 위로 끌어올리는 발탁 인사를 최근까지 했지만 올해부터는 여성 발탁 인사를 없앴다”고 말했다.

이 은행의 과장급 여성 비율은 현재 15.1%. 2002년 10.9%보다 크게 늘었다.

중간 관리직의 여성층이 탄탄해지고 있어 더는 발탁 인사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것이다.

이화여대 경영학과 강혜련 교수는 “여성 비율이 극히 낮은 조직에서는 여성이 ‘토큰’, 즉 상징적 존재로 부각된다”면서 “토큰은 전시 행정을 가리키는 말로 여성 발탁 인사가 대표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시험대 오른 여성 리더십

여성 관리자가 늘면서 여성의 리더십도 시험대에 올랐다.

여성은 개인적 능력은 뛰어나지만 리더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한국여성개발원이 지난해 연구개발직에 종사하는 여성 200명에게 여성 근로자의 특성을 설문 조사한 결과에서도 리더십은 남성이 낫다는 응답이 나왔다.

응답자의 23.9%가 남성이 뛰어나다고 답했다. 여성이 낫다는 응답은 10%에 그쳤다.

업무 성과나 성실성은 남성에 비해 비슷하거나 오히려 여성이 뛰어나다는 조사 결과였지만 리더십에 관한 한 여성 스스로 약점이라고 인정한 셈이다.

이에 대해 LG CNS 금융사업본부 조윤기(여) 차장은 “여성 상사가 네트워크나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데 일정 부분 동의하지만 이는 남성적 접대 문화가 당연시됐을 때의 이야기”라고 잘라 말했다.

남성적 카리스마를 리더십의 전부로 봐선 곤란하다는 지적도 있다. 조직 환경의 변화로 리더십도 다양성을 요구받게 됐다는 것이다.

아모레퍼시픽 브랜드매니저 안수정(여) 팀장은 “남녀의 다른 특징을 감안해 칭찬할 때도 여자 후배에겐 반복적으로 잘했다고 하고, 남자 후배에겐 사실 중심으로 이걸 잘했다고 꼭 집어서 칭찬한다”면서 “이런 게 여성의 섬세함이고 또 하나의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여성 중간 관리자가 갈수록 늘어나는 만큼 이제 이들이 능력과 리더십을 발휘해 임원 이상의 고위 간부로 올라갈 수 있을지도 기업 안팎에서 주목하고 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 아직은 고달픈 ‘여자 상사’

여성 중간 관리자의 진출 확대는 여성, 기업, 사회 변화 등 3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고학력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었고, 기업의 폐쇄성도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계기로 여성 인력을 활용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도 본격화됐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양인숙 박사는 “10년 전부터 대졸 여성의 취업이 본격화됐다”면서 “중도 포기하지 않은 당시 여성들이 이제 중간 관리자로 성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를 살펴보면 50%대에 머물던 대졸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1997년을 기점으로 60%대로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외환위기 여파로 잠시 주춤했지만 다시 증가세를 보여 2006년 현재 62.2%까지 늘어났다.

이는 고학력 여성의 활동 영역이 넓어졌고 기업의 진입 장벽도 낮아졌다는 말이다.

한 기업의 인사 책임자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국제경쟁에 돌입하면서 기업 스스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체질을 개선해야 했다”며 여성들을 본격 채용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2002년에 최연소로 금융 1번지 명동 지점장으로 발탁돼 화제를 모았던 국민은행 윤설희(44) 지점장도 “여직원들에게 기회가 확대된 건 우수한 인재가 그만큼 많이 들어오기도 했지만, 조직 내에서 연공서열이 사라지는 변화가 시작됐고, 여성 인력을 적극 활용하라는 사회적 요구도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 女중간관리직 증가 배경

여성의 중간 관리직 진출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이에 따른 조직 내 갈등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여성 상사에 대한 거부감은 특히 남성 관리자에 익숙한 조직문화를 가진 곳일수록 강하게 나타난다.

지난해 과장으로 승진한 모 은행의 영업지점 김희원(가명·31) 과장은 꽤 힘든 적응기간을 보냈다고 했다. 김 씨는 “새로 배치된 팀이 워낙 소규모여서 과장이 되자마자 팀장을 맡게 됐다”면서 “직원들을 통솔해야 했는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적대감이 느껴졌다”고 털어놓았다. 여성 팀장을 처음 만난 남자 직원들은 부담스러워했고, 여자 직원들은 시기심을 보였다는 설명이다.

사소한 신경전이 심각한 갈등으로 번지기도 한다. 여자 상사와 부하 직원이 사사건건 충돌하는 경우다. 특히 여자 상사의 나이가 어릴수록 직원들의 반감이 심하다.

한 대기업의 인사팀장은 “여자 상사의 나이가 어릴 경우 속으로 ‘나이도 어린 계집애가 어딜…’ 하며 맞서는 직원이 있다”며 “상담을 해도 문제가 안 풀리면 해당 직원을 다른 곳으로 전근시키기도 한다”고 전했다.

갈등이 심할 경우 회사 차원의 손실이 크기 때문에 예의주시하며 관리를 하는 기업도 있다.

한 제조업체는 적성검사와 함께 성격검사를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별도 상담실도 운영하고 있다. 여성 관리자나 그 부하 직원들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이 회사 관계자는 “성격이 공격적이거나 여성에게 적대적인 성향이 있는 남자 직원들은 주의를 주거나 그것도 안 되면 남자 상사가 있는 곳으로 보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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