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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2월 1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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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플랜트 전문 업체인 JGC를 찾아갔다. 말레이시아 천연가스 처리시설 공사에 참여시켜 달라고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담당자는 만나 주지도 않았다. 용접도 잘 못하는 한국 기업에 일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며칠을 기다린 윤 전 전무는 점심식사 후 졸고 있는 담당자를 습격하다시피 해 면담에 성공했다.
“맡겨만 주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 10년 전의 한국이 아니다.”
윤 전 전무의 열정에 감복한 그는 현대건설에 하청을 맡겼다. 이 담당자는 현재 JGC의 사장인 모리모토 효지 씨다.
윤 전 전무는 “모리모토 씨가 사장이 된 뒤 만나 보니 ‘예전에 하청을 주던 한국 기업들이 이젠 경쟁자가 됐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한때 싼 인건비에만 의지해 저가(低價) 수주로 연명했던 한국 건설사들이 이젠 세계의 주요 기업들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고 있다. 기술력은 물론 40년 이상 쌓인 노하우를 제대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한국의 가우디를 꿈꾼다
한국 건설사들은 미국 일본 등 일부 국가들이 독점하다시피 한 초고층 빌딩과 호화 건축물 부문에서도 두각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부문별 해외건설 수주액에서도 건축 부문은 전년의 3배로 늘어 토목이나 플랜트 부문의 증가율을 크게 앞질렀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2003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았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KLCC(452m·88층)를 시공했다. 1993년 공사를 수주했을 때만 해도 삼성건설은 30층짜리 빌딩을 지어본 게 고작이었다.
| ‘해외경영’ 기사목록 |
삼성건설은 여세를 몰아 2004년에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버즈두바이 공사를 수주했다. 이 빌딩은 지상 160층 이상, 연면적 15만 평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계획돼 있다. 내년 11월 준공 예정.
삼성건설은 3일에 한 층씩을 지어 올리는 신공법을 적용하고 있다.
현재 지상 50층 이상, 높이 200m 이상인 빌딩은 전 세계에 403개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삼성건설은 이 가운데 7개를 시공했다.
대우건설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지상 77층짜리 텔레콤 빌딩을 지어 건설 명가(名家)의 자존심을 세웠다. 1998년 완공된 이 빌딩은 3개 층마다 옥외 정원을 조성하고 건물 내부는 아예 기둥을 없애 눈길을 끌었다. 대우건설은 이 빌딩을 지으면서 ‘800만 시간 무재해’ 기록을 세웠다.
쌍용건설은 고급 호텔 부문에서 탄탄한 실적을 자랑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상징인 래플즈시티 복합건물, 미국 애너하임 메리어트호텔, 두바이의 3대 호텔에 포함되는 그랜드하이엇호텔과 에미리트타워호텔 등 지금까지 1만 객실 이상을 지었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1985년 싱가포르 독립 26주년 기념연설에서 “우리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한국인이 래플즈시티에서 보여 준 것과 똑같이 해낼 수는 없다. 한국인은 강인했고, 우리 모두는 그것을 직접 확인했다”고 말했다.
○지도를 바꾸다
토목과 플랜트 건설은 한국 회사들이 일찌감치 터를 닦은 분야.
건설업계의 맏형 격인 현대건설이 처음 해외시장에 진출한 계기도 1965년 태국의 고속도로 공사였다. 현대건설은 2002년에는 12억 달러 규모의 이란 사우스파 가스처리시설 공사를 따내 플랜트 부문의 경쟁력을 과시했다.
현대건설은 36개월 만에 공사를 마쳐 세계 플랜트 업계에서 가장 짧은 공기(工期)를 기록했다.
대우건설도 파키스탄 고속도로, 라오스 호웨이호 댐 등을 지어 해외건설 역사에 새 장을 열었다. 파키스탄 고속도로는 단일 업체가 시공한 세계 최장(357km) 고속도로다. 호웨이호 댐의 발전(發電)용 수직터널은 아시아 최대 낙차(713m)로 남아 있다.
대우건설은 또한 나이지리아 가스 플랜트 등 아프리카에서 한국 업체로는 독보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
쌍용건설은 지난해 인도 고속도로청이 발주한 총연장 179km의 공사를 1억5732만 달러에 따내면서 브릭스(BRICs) 국가에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 공사는 총 5개 공구로 나뉘어 있어 시공사도 5개 업체가 참여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쌍용건설이 이례적으로 1개 공구를 뺀 나머지 전부를 맡게 됐다.
삼성건설도 지난달 싱가포르 복합화력발전소 공사(6억 달러)를 수주하는 등 토목과 플랜트 부문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세계 최고 빌딩” 해마다 1등이 바뀐다
1974년 미국 시어스타워(442m·지상 108층)가 완공됐을 때 세계는 건축기술의 극한을 보여줬다며 격찬했다. 시어스타워는 이후 24년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1998년 말레이시아에 452m(지상 88층)짜리 KLCC가 위용을 드러내면서 초고층 빌딩 1위 자리가 바뀌었다.
이어 불과 6년 뒤인 2004년 대만에 500m의 벽을 깬 타이베이 파이낸셜 센터가 들어서면서 초고층 건물의 역사를 다시 써야 했다. 그러나 내년이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높이 700m 이상인 버즈두바이가 완공된다. 4년 만에 초고층 1위가 또 바뀌는 셈이다. 버즈두바이는 서울 여의도 63빌딩(249m) 3개 동을 수직으로 쌓은 높이와 비슷하다.
이처럼 각국이 초고층 빌딩 경쟁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보다 도시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지만 이를 이용해 국가나 도시의 브랜드를 높이겠다는 전략도 깔려 있다.
실제로 말레이시아 공기업인 ‘페트로나스’가 발주한 KLCC는 모하메드 마하티르 전 총리가 국가 상징물을 만들기 위해 적극 추진했다는 후문이다. 버즈두바이도 중동의 금융·교역 중심지인 두바이를 알리기 위해 기획됐다. 건설업계에서는 ‘빌딩 높이=국력’이라는 뼈 있는 농담도 한다.
한국도 개별 기업이나 단체가 초고층 빌딩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대부분 구상 단계에 머물러 있다. 지상 112층으로 설계된 ‘잠실 제2 롯데월드’는 1995년부터 추진됐지만 답보 상태다. 국방부가 잠실에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면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을 이용하는 비행기의 안전에 문제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기 때문.
서울 중구청은 세운상가 옆에 220층짜리 빌딩을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서울시가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대문 안에는 지상 30층(90m) 이상 건물이 들어서지 못 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이 “도심 초고층 빌딩 건립을 위한 중장기 도시계획 마스터플랜을 마련하겠다”고 밝혀 가능성은 다소 높아졌지만 실제로 공사를 시작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세계 주요 초고층 빌딩(단위: m) 빌딩 위치 높이(층수) 타이베이 파이낸셜 센터 대만 타이베이 508(101) KLCC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452(88) 시어스타워 미국 시카고 442(108) 진마오타워 중국 상하이 421(88) 2인터내셔널 파이낸스 센터 중국 홍콩 416(90) CITIC플라자 중국 광저우 391(80) 순힝스퀘어 중국 선전 384(69)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미국 뉴욕 381(102) 센트럴플라자 중국 홍콩 374(78) 뱅크오브차이나타워 중국 홍콩 367(72) 자료: 엠포리스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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