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분양가와의 전쟁’ 벌이는 성무용 천안시장

  • 입력 2006년 10월 6일 21시 24분


가격 담합을 했다고 적발된 아파트 주민들은 한결같이 “정부가 폭등하는 아파트 분양가는 내버려두고, 힘없는 주민들만 잡는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그렇다고 아파트 값 상승을 도모한 집단이기주의가 정당화되진 않지만 아파트 분양가 급등이 심각한 문제인 건 사실이다. 자율화 후 걷잡을 수 없게 된 아파트 분양가와 싸움을 벌이는 성무용 천안시장(사진)은 그래서 주목받는다.

연일 치솟는 아파트 분양가가 부동산시장을 뒤흔드는 ‘태풍의 핵’으로 부상하고 있다. 판교 2차 44평형의 실분양가가 평당 1840만원을 찍은 데 이어 10월 중 분양 예정인 서울 은평뉴타운의 아파트 분양가가 중소형은 평당 1400만원선, 중대형은 1500만원선에서 책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청약통장에 담긴 몇백만원이 서민에겐 단순히 돈이 아니라 꿈이었는데, 천정부지로 치솟은 분양가에 비하니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고(高)분양가 태풍의 영향은 서울과 수도권은 물론 지방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 와중에 지방자치단체가 아파트 분양가를 통제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8월23일 대전지방법원 행정부(재판장·신귀섭 부장판사)는 아파트 시행사 (주)드리미가 천안시를 상대로 낸 ‘입주자모집공고안 불승인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민간자본으로 토지를 매입해 조성한 부지에 신축되는 아파트에 대해 분양가를 제한할 수 있는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며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이 소송은 천안시가 2004년부터 시행해온 ‘분양가 가이드라인 제도’가 발단이 됐다. 천안시는 2002년 400만원대이던 아파트 평당 평균 분양가가 2003년 577만원으로 급등하자 ‘아파트 분양가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건설사가 이를 초과해 분양 승인을 요청할 경우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4년 599만원, 2005년 624만원, 올해 655만원으로 정해진 가이드라인은 천안시가 매년 초 분양가를 자체 조사하고, 지역의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물. 지난 2년간은 가이드라인이 별 문제없이 지켜져왔다.

655만원 vs 877만원

그런데 천안 불당동 및 쌍용동 일대에 중대형 아파트 297가구(시공사 한화건설)를 분양할 예정인 시행사 (주)드리미가 천안시의 가이드라인 제도에 제동을 걸었다. 드리미는 지난 2월, 평당 920만원에 분양 승인을 신청했다가 천안시가 조정을 권고하자 877만원으로 낮췄다. 하지만 천안시는 분양가를 더 낮출 것을 요구했고, 드리미는 천안시가 권고하는 655만원으로 분양가를 맞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평당 877만원에 분양할 수 있도록 승인해줄 것을 재차 요청했다.

대전지방법원 행정부는 판결문에서 “주택시장의 안정 등 공익상의 필요를 들어 법적인 근거 없이 가격 통제를 행하는 것은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으로, 법치행정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시도”라고 일침을 놓았다.

소송 당사자인 성무용(成武鏞·63)은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는 법원의 지적에 발끈했다. 성 시장은 “법원이 오히려 공공의 이익을 외면하고 기업의 이익을 위한 판결을 내렸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대다수 국민의 관심이 아파트에 쏠려 있는데, 재판부가 그런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 천안시는 9월11일, 법원에 항소했다.

“3년째 이 제도를 시행해오고 있지만 지금껏 한 번도 문제가 없었어요. 건설업자들이 가이드라인을 잘 따라줬습니다. 올해도 2건, 1200가구가 가이드라인에 맞게 분양을 했어요. 덕분에 다른 지역에 비해 천안은 아파트 값이 비교적 안정됐죠. 이번 판결이 잘못되면 파장이 엄청날 겁니다. 현재 600만원대인 분양가가 갑자기 1000만원 안팎으로 치솟으면 부동산 투기하는 사람들이야 재미를 보겠지만 내 집 갖고 싶어 하는 서민은 언제 아파트를 살 수 있겠습니까?”

천안시에 따르면 불과 3∼4년 전만 해도 대전의 아파트 값이 천안보다 쌌다. 그러나 현재 대전의 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850만원인 데 비해 천안은 650만원을 유지하고 있다. 평택도 천안의 평균 분양가가 600만원일 때 550만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평당 850만∼900만원에 분양되고 있다고 한다.

입주자 모집 승인, 기속행위인가?

그러나 정작 천안시민들은 천안시가 아파트 분양가 가이드라인을 적용해온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번 소송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시민들도 알게 됐고, 1심에서 천안시가 패소하자 아파트 분양가가 갑자기 오를 것을 염려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안에 천안에서 아파트를 분양할 예정이던 업체들이 재판 결과에 따라 분양가를 높일 수 있을 것을 기대하며 분양 시기를 늦추고 관망하는 형편이다.

성 시장은 “천안 지역 아파트 값이 다른 지역에 비해 안정된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자체적으로 가이드라인 제도를 검토, 문제점을 보완할 계획이었다”고 말한다. 1, 2월에 분양하는 경우와 12월에 분양하는 경우 같은 해라도 1년 가까이 시차가 있기 때문에 연초에 정한 가이드라인을 동일하게 적용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판단, 상반기와 하반기에 각각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등의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는 것. 그런데 “이번 소송으로 인해 가이드라인 자체가 무너져버리게 생겼다”며 우려를 표했다.

구미화 신동아기자 m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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