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 고려대교수 “10년간 기업인 만나며 생각 달라져”

  • 입력 2006년 7월 21일 03시 00분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은 19일 본보 기자와 만나 “소액주주의 권리를 찾는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현실을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은 19일 본보 기자와 만나 “소액주주의 권리를 찾는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현실을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참여연대의 소액주주 운동을 주도하며 대기업을 강력히 비판해 온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이 최근 상당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기업 저격수’라는 말까지 들은 과거와 달리 기업 현실을 이해하는 ‘부드러운 경영 조언자’로 변신하고 있다.

장 학장은 삼성전자를 ‘왕관(王冠)의 보석’에 비유하며 경영을 가장 잘하는 회사로 평가하는가 하면,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이 검찰에 구속되자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를 고려해 수사를 신속히 마무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9∼22일 대한상공회의소 주최로 제주 서귀포시 롯데호텔에서 열리고 있는 ‘제31회 최고경영자대학’에 강연을 위해 참석한 그를 19일 저녁 한 식당에서 만나 ‘변신의 이유’부터 물었다.

“소액주주 운동을 시작했을 때는 기업들이 저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지만 지금은 제 주장에 일정 부분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이 변하면서 이제 저를 보는 시각도 달라지고 있는 것이죠. 저도 사실 지난 10여 년간 여러 기업인과 만나 부딪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현실을 잘 이해하게 됐습니다. 저도 아마 달라졌을 겁니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매섭게 비판했다.

“시장은 세계화의 흐름을 타고 급변하고 있는데 권위주의적 악습을 고집하며 시장의 자율성을 해쳐 왔습니다. 그 결과 경제가 어려워진 것이죠. 개혁이라는 구호만 내걸었지 실천은 뒤따르지 못했어요. 한마디로 개혁을 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정권입니다.”

현 정부에서 자주 논란이 된 성장과 분배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떨까.

“사회안전망 확충으로는 분배 효과가 제한적입니다. 고용과 투자를 활성화하는 양질의 성장을 통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분배가 이뤄지도록 해야 하는데 ‘약자를 위한 정책’이라는 명분에만 집착해 부작용만 키운 것이죠.”

1가구 1주택 보유자에게까지 고율의 양도세를 부과하는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도 부정적 시각을 보였다.

“단순히 자산가치가 상승했다는 이유만으로 중과세하는 것은 시장경제 질서를 부정하는 사실상의 ‘몰수 조치’입니다. 무거운 거래세 탓에 주택시장의 유동성이 사라지면서 시장을 망가뜨렸습니다. 부자에 대한 막연한 반감이 담긴 무차별적 정책입니다.”

일부 기업 노조의 파업에 대한 의견도 물어 봤다.

“대기업 노조가 사회적 약자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정부가 기득권을 지키려는 대기업 노조에 재벌과 같은 기준으로 개혁의 칼을 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대기업의 현재 지배구조에 대해서는 여전히 강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기업의 발목을 잡자는 게 아닙니다. 성장기에는 알 수 없지만 불황이 오면 그 부작용이 드러나게 됩니다. 지배구조가 더욱 개선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사라집니다. 삼성 같은 기업들도 이제 지배구조 개선의 필요성을 체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부자가 돈을 쓸 수 있어야 경제가 살아난다고 강조했다.

“소득보다는 자산 증가에 의한 소비 성향이 훨씬 높습니다. 자산 계층의 소비를 유도할 수 있는 정책 개발이 절실합니다. 소비 확대를 위해서는 고용부터 늘려야 합니다. 특히 소비 성향이 높은 젊은층의 취업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성장이 둔화된 상황에서 획기적으로 고용을 늘릴 묘책이 있느냐고 되받아쳐 봤다. 그는 ‘노조의 자제’를 전제로 정규직 비중을 늘리는 데서 해법을 찾았다.

“노동계가 무리한 요구와 무분별한 파업을 자제한다는 전제 아래 사측은 정규직 비율을 늘려야 합니다. 비정규직은 조직에 대한 충성도와 생산성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잘 교육받은 정규직 1명은 비정규직 2명 이상의 몫을 하기 때문에 비용 측면에서도 기업에 불리하지 않습니다. 특히 정부가 법으로 비정규직을 보호하려 들 경우 오히려 노동 유연성을 떨어뜨려 실업률을 높이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삼성그룹이 외부 경영자문단으로 조직한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삼지모)’의 참여 요청을 왜 거절했느냐고 물었다.

“삼지모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공식적인 틀에 얽매이지 않고 기존의 조언자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한편 장 학장은 20일 열린 대한상의 초청 강연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경영 능력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그는 “이 회장 일가의 삼성전자 지분은 3.5%에 불과하지만 이 회장이 경영인으로 인정받는 것은 삼성전자의 성과 때문”이라며 “이 회장은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에 가깝다”고 말했다. 다만 “기업 경영권도 시장경쟁의 대상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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