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국세청장 돌연 사퇴]“세금 탓 선거참패”에 부담 느낀듯

  • 입력 2006년 6월 28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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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켜진 국세청사  이주성 국세청장이 사의를 표명한 27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사에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다. 이 청장의 갑작스러운 사의 표명 배경에 정관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미옥 기자
불켜진 국세청사 이주성 국세청장이 사의를 표명한 27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사에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다. 이 청장의 갑작스러운 사의 표명 배경에 정관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미옥 기자
27일 낮 12시 40분경. 이주성 국세청장은 국장 10여 명과 함께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추어탕을 먹었다. 국세청, 관세청, 조달청, 통계청에 대한 오전 국회 결산심사가 끝난 직후였다.

이 청장은 점심 식사 도중 “국세청 선후배들이 단결을 해야 한다. 항상 하는 얘기지만 나는 언제라도 책임질 것은 책임지겠다. 국세청장 얼마 해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는 “하반기에 종합부동산세가 부과되면 국세청이 훨씬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지금도 세금폭탄 운운하는데…”라는 말도 했다.

이날 오전 국회 결산감사에서 의원들의 질문은 대부분 (세금 문제와 관련해) 국세청장에게 집중됐다.

점심식사에 참석한 국장들은 “이 청장이 항상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와서 그러려니 했다”면서 “종부세는 정책으로 결정된 문제인데 단순히 집행하는 국세청에 책임지라는 것은 이상한 것 아니냐는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오후 4시경 국회 일정을 끝낸 이 청장은 청와대에 들러 사의를 밝힌 뒤 국세청으로 돌아가 한 장짜리 사퇴문을 남기고 오후 6시 20분경 퇴근했다.

사정을 모르는 국장들은 청장이 이례적으로 일찍 퇴근한 데 대해 ‘온종일 국회에서 시달려 피곤해서’라고 추측했다가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만큼 그의 사퇴가 전격적이었다는 얘기다.

이 청장은 다음 달 한중 국세청장 회의 일정을 잡아놓았으며 최근까지 “올해 말경 국세청장을 그만두겠다”고 말해왔다.

그는 이날 국회 결산심사가 시작되기 직전 10여 분간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을 단독으로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자리는 이계안 의장비서실장이 한상률 서울지방국세청장에게 요청해 이루어졌다.

국세청 관계자들은 “김 의장이 이 자리에서 ‘5·31지방선거 참패에 국세청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을 했고 이 청장은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으나 김 의장 측은 이를 부인했다.

김 의장은 이날 밤 본보 기자를 만나 “이 청장이 사표를 낼 줄 전혀 몰랐다”면서 “내가 이 청장을 만난 것과 사의 표명은 인과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 지방선거 참패 책임을 물었나

국세청에서도 이 청장이 김 의장과의 만남과 관계없이 이미 지난주 사퇴 결심을 굳혔다는 관측이 많다.

여당 지방선거 참패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조세행정의 수장으로서 적지 않은 책임감을 느껴 왔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로부터 언질이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세청장이 개각 대상에 들어 있었느냐는 질문에 “부총리, 장관, 차관급 순서로 인사가 진행되는 만큼 국세청장은 한참 뒤가 아니냐”며 “이번 교체 대상에 넣었던 것은 아니다”고 했다.

국세청은 6월 중순경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지방청장 인사를 실시할 예정이었으나 뚜렷한 이유 없이 차일피일 미뤄 왔다. 이 청장이 이미 사퇴 결심을 굳히고 인사를 미뤘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 청장의 사퇴가 워낙 이례적이고 충격적이어서 정관계에는 외부 압력설, 내부자 투서 등 갖가지 루머가 나돌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 나도는 비리 포착설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그런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 경제팀 교체 본격화하나

청와대와 국세청에 정통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 청장의 사퇴와 관련해 “정책 오버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 및 청와대와 코드가 맞질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이 청장의 사퇴가 여당의 지방선거 참패 또는 정책을 둘러싼 갈등과 관련이 있다면 그 영향은 국세청장에서 머물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지방선거 참패 책임을 물은 것이라면 경제부처 장관들도 개각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고 추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열린우리당 일각에서는 세금과 관련된 경제부처의 책임론이 심심찮게 거론돼 왔다.

또 세금 문제 때문이라면 집행기관인 국세청보다는 정책을 만든 재정경제부가 더욱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따라서 국세청장 사퇴를 경제팀 물갈이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국세청 내부에서도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이 청장 스스로 ‘만성적 인사적체를 해소할 필요가 있어서’라고 밝혔듯이 국세청은 인사적체에서 오는 조직이완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시점이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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