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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3월 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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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항복’에 고무되었는지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재벌그룹 구조본의 역기능을 지적하며 구조본이 쓰는 경비의 공개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삼성 구조본의 이학수 부회장은 구조본의 역기능이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며 순기능에 대한 정부의 이해를 주문했다고 한다.
강 위원장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더도 말고 ‘너나 잘 하세요’. 국가예산인 특정업무경비를 불법적으로 개인통장에 넣어 사용했고 어디에 썼는지 밝히지도 못한다면서요. 그 일로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에게서 사퇴 권고까지 받지 않았습니까. ‘관행’을 핑계로 자신의 불법적인 혈세 지출 명세는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으면서 민간 기업의 경비를 공개하라는 것은 이중 잣대 아닙니까.”
강 위원장은 취임 이래 경제계를 향해 “시장 참여자의 의식과 관행을 개혁하겠다”고 외쳐왔기에 그의 이중성은 문제가 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가 공정거래법과 경쟁정책에 대해 제대로 된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재벌개혁이 후퇴했고 기업 경쟁력이 약화됐다.
공정거래정책에 대한 강 위원장의 시각은 1960, 70년대 미국을 풍미했던 ‘포퓰리스트(populist) 접근법’과 유사하다. 그 시기 미국은 소규모 사업자의 보호와 경제력 분산을 위해 대기업들의 행위를 무차별적으로 규제했다. 강 위원장 역시 지난 3년간 재벌정책을 일률적 규제 중심으로 운용해 왔다. 오죽했으면 그와 절친했던 좌파 논객 고(故) 정운영 교수조차 그에게 출자총액제한과 금융사 의결권제한 제도를 폐지하라고 권고했겠는가.
포퓰리스트 접근법은 창의적 기업 활동과 건전한 경쟁을 저해하고 소비자 이익을 낮춘다. 미국에서는 이에 대한 반성으로 1970년대 후반부터 경쟁 촉진과 경제적 효율성을 중시하는 ‘경제학적 접근법’이 대폭 강화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공정거래법으로 신문사의 마케팅까지 규제할 정도로 ‘정치적’ 포퓰리스트 접근법이 판을 치고 있다.
김&장 법률사무소의 신광식 박사는 최근 ‘공정거래정책 혁신론’이라는 저서에서 지금까지의 재벌 규제는 신뢰성과 실효성을 크게 상실했으며 오늘날의 글로벌 경제 환경과 충돌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지식정보화와 세계화 시대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려면 공정거래법과 정책을 전면적으로 혁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공정위는 지난 20여 년간 재벌이나 대기업에 의한 비계열회사 결합 1600여 건 중 단 1건만 규제했으며, 기업결합 8000여 건 중 단 5건만 금지했을 뿐이다. 경쟁을 크게 저해할 대기업의 결합 행위는 모두 허용했다. 이렇듯 그간의 규제 위주 정책은 구호만 요란했지 정작 경쟁 촉진에는 실패했다. 신 박사는 실효성을 상실한 직접 규제를 철폐하는 대신 경쟁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공정거래법을 엄정히 집행할 것을 주문한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지 스티글러는 규제기관이 규제 대상 기업들에 쉽게 사로잡힌다고 경고했다. 공정위는 ‘경제학적 접근법’ 대신 일률적 규제 위주로 공정거래법을 집행해 왔다. 그 과정에서 공정위는 재벌이나 대기업의 로비에 ‘포획’된 규제기관으로 전락했다. KTF가 공정위에서 사건화될 7건을 로비로 막았다는 최근의 문건이 진위(眞僞)를 떠나 이를 말해 준다.
공정위는 이달에 새 위원장을 맞이한다. 위기에 빠진 공정위를 살리고 재벌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경쟁법과 기업 현실에 정통한 전문가 위원장이 필요하다. 공정거래법 제37조는 위원장 및 위원들의 전문성을 명시적으로 규정한다. 법 규정에 맞는 ‘합법적’ 인사를 기대한다.
신임 위원장은 그간 방치되어 왔던 재벌들의 기업결합이나 시장지배력 남용을 효과적으로 규율할 수 있도록 전문가를 영입해 공정위의 전문성과 법집행 역량을 키워 나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 기업들이 살고 경제가 산다.
김인규 객원논설위원·한림대 교수·경제학 igkim@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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