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의 새해다짐]저 붉은 쇳물처럼…끓어라, 한국경제

  • 입력 2005년 12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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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포항제철소 근로자들은 일터에서 새해를 맞는다. 하루라도 불을 지피지 않으면 용광로의 쇳물이 굳어 못쓰게 되기 때문이다. 포항제철소 연주공장의 한 근로자가 쇳물을 받아 철강재 중간 원료인 슬래브를 만들고 있다. 포항=안철민 기자
포스코 포항제철소 근로자들은 일터에서 새해를 맞는다. 하루라도 불을 지피지 않으면 용광로의 쇳물이 굳어 못쓰게 되기 때문이다. 포항제철소 연주공장의 한 근로자가 쇳물을 받아 철강재 중간 원료인 슬래브를 만들고 있다. 포항=안철민 기자
《포스코 포항제철소 임직원 7967명은 담장을 따라 심어 놓은 피라칸타(장미과 나무)를 보며 출근한다. 겨울이면 알알이 맺히는 이 나무의 열매는 달아오른 쇳물처럼 붉은 색이다.

이 담 옆으로 노란색 가스관이 벽을 따라 얽혀 있는 110m 높이의 건물이 포스코가 자랑하는 ‘파이넥스로(爐)’ 공장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먼발치에서도 더운 바람이 후끈 몰려 왔다. 개공기(開孔機)가 소음을 내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길이 8m, 직경 3.6cm의 드릴이 세차게 돌아가며 파이넥스로 아래쪽의 진흙 벽을 뚫었다. 붉은 쇳물이 막 파낸 샘물처럼 뿜어 나왔다.

가열을 멈추면 굳어 버리는 쇳물은 휴일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1973년 제1기 고로(高爐) 준공 이후 끊이지 않는 쇳물은 포스코의 상징이자 한국 철강산업의 상징이다. 병술년 새해를 앞두고 기자가 이곳을 찾은 세밑에도 여전히 쇳물이 흐르고 있었다.》

○ 도약의 2006년을 향해

포항제철소 파이넥스로 공장

2006년은 포스코에 있어 중요한 한 해다. 1992년 연구를 시작해 2003년 시험용 공장 가동에 들어간 파이넥스로가 비로소 ‘상업 생산’을 하기 때문이다.

파이넥스는 포스코가 미래를 걸고 있는 새로운 개념의 제철 기법이다. 기존의 고로(용광로) 방식에 비해 투자비를 20% 가량 적게 들이고도 에너지 효율은 10% 정도 높일 수 있는 첨단 기술이다. 쇳물 제조 원가는 기존 고로의 83% 수준이다.

파이넥스로 연구개발추진반의 이후근 실장은 “저가(低價)의 철광석과 석탄을 1차 가공 없이 그대로 사용할 수 있어 기존 용광로에 비해 경제적”이라며 “언젠가는 파이넥스로가 고로를 대체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경렬 포항제철소장(부사장)은 “장기적으로 좋은 품질의 원료가 고갈되기 때문에 저급재를 사용하는 파이넥스로의 경쟁력은 높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험용이라고는 해도 파이넥스로는 현재 연간 70만 t 정도의 쇳물을 뽑아 내며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 공장 인근에 연 생산량 150만 t 규모의 상업용 파이넥스로가 건설되고 있다. 2006년 6월 완공, 12월 생산이 목표다. 성능이 검증된다면 포스코는 2007년 착공하는 인도 제철소에도 파이넥스로를 도입하기로 했다.

파이넥스 유동환원연구팀 정선광 책임연구원은 “파이넥스로의 규모를 키우는 작업이 성공 여부를 판가름 한다”며 “150만 t 규모 공장 건설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파이넥스로에서 생산된 쇳물은 이내 ‘토피도 카’라는 쇳물 운반용 기관차에 실려 제철소 내 각 공장으로 향했다. 직원들이 폐쇄회로TV 모니터로 이 진행 상황을 꼼꼼히 점검하고 있었다.

○ 철의 도시, 새 태양을 맞다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한국 경제의 흐름과 궤적을 같이한다.

1970∼80년대 기간산업의 기반을 닦았고 1990년대 자동차, 조선업 발전의 밑거름을 제공했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의 다른 모든 산업과 마찬가지로 중국 산업계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는 점도 한국 경제를 축소해 놓은 듯하다.

포스코가 선박용 고강도 후판, 전력 손실이 적은 고급 전기강판 등 첨단 제품에 사활을 거는 것도 기술력으로 중국의 도전을 뿌리쳐야 하기 때문이다.

포항제철소와 한국 경제의 또 하나 닮은꼴은 쉼 없이 흘러온 성장 과정에 있다. 고로에서 쇳물의 생산이 중단되는 순간 그 고로는 쇳덩이가 엉겨 붙어 못쓰게 된다. 아무리 경기가 좋지 않은 때라도 일정량의 쇳물을 계속 생산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불을 꺼뜨리면 안 되는 제철업은, 그래서 ‘프로메테우스의 선물을 멍에처럼 짊어진 산업’이다. 1975년 포항제철소에 입사해 정년을 19개월 앞둔 박근동 주임은 “불을 한번 지펴 놓으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것이 이 일”이라고 말했다.

박 주임은 휴일인 신년 첫날에도 일터인 파이넥스로를 찾아 “올해는 안전사고가 없는 해로 만들자”며 현장 직원들을 독려할 예정이다.

포항시 호미곶은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태양이 뜨는 곳. 일부러 먼 곳에서 이곳까지 찾아와 새해를 맞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포항제철소 직원들은 1년의 첫날이건 마지막 날이건 특별할 것이 없다.

남들처럼 태양을 맞으러 산을 찾지도 않고, 바닷가에서 밤을 지새우지도 않는다. 공장은 쉼 없이 늘 돌아가야 하고 쇳물은 끊임없이 쏟아져야 한다. 그저 일터에서 묵묵히 맞는 새해의 태양에서 그들은 각오를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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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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