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열매, 이보다 달콤할 순 없다

  • 입력 2005년 9월 2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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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인천자동차(옛 대우차 부평공장) 근로자들이 자동차를 조립하고 있다. 인천=주성원 기자
대우인천자동차(옛 대우차 부평공장) 근로자들이 자동차를 조립하고 있다. 인천=주성원 기자
《22일 오후 인천 부평구 청천동 대우인천자동차(옛 대우차 부평공장) 조립 1공장. 도색은 끝냈지만 아직 ‘속’은 채우지 못한 차체(車體)들이 줄줄이 조립 공정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근로자들이 척척 부품을 맞추는 차들은 GM대우자동차의 소형 세단 ‘칼로스’와 ‘젠트라’였다. 하지만 어쩐지 생소해 보였다. 노란색, 하늘색 등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색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니 차 앞뒤에 붙은 로고도 GM대우차가 아니라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시보레 브랜드였다.》

○ 수출로 잠 못 드는 밤

내수 시장이 썩 좋지 않은데도 하루 22시간씩 공장이 돌아가는 이유가 있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차의 95%가 수출용이다.

유가(油價)가 오르면서 유럽과 북미 시장에서 소형차의 인기가 높아졌다. 특히 칼로스는 지난해 8월부터 13개월째 북미 시장 소형차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이 공장에서만 1분에 1대꼴로 차가 완성된다. 2002년 16만 대였던 이 회사의 생산량은 올해 48만 대까지 늘어났다.

근로자 강희원(姜熙遠·43) 씨는 “3년 전만 해도 일감이 없어 1주일 일하고 1주일은 쉬었는데 지금은 초과 근무 수당까지 받는다”며 “그때는 월급이 적어 쉬는 날이면 공사장 막일을 해 생계를 꾸렸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조권래(趙權來·46) 씨가 “이제 회사가 흑자 전환하면 성과급도 바랄 수 있다”고 거들었다.

GM은 2002년 대우자동차를 인수하면서 부평공장은 제외했다. 경쟁력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대신 ‘전 직원이 2교대로 근무할 만큼의 생산량’ ‘매년 4%의 생산성 향상’ ‘GM의 평균보다 높은 품질’ ‘노사 평화’ 등의 조건이 충족되면 인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이 공장은 독립법인으로 전환해 6년 반 동안 GM대우가 위탁 생산한 차를 납품하는 처지가 됐다. 그 안에 인수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이후 3년. GM은 다음 달 중 이 회사를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빨라도 내년 5월은 돼야 할 것이란 예상을 깬 것. 경쟁력을 인정한 셈이다.

○ 고통의 세월은 가다

대우인천차의 품질 경쟁력은 근로자들이 만들어냈다.

라인 책임자 박보영(朴普泳·59) 씨는 “2001년 1750명이 정리해고되자 남은 직원들 사이에 ‘품질만이 회사를 살리는 길’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며 “근로자 스스로 작업 실명제에 찬성했다”고 말했다.

누가 조립한 라인에서 불량품이 나오는지 파악해 고쳐 나가자는 취지였다.

한때 강성노조로 유명했던 노사관계도 변했다. 올해 자동차업계에서는 가장 먼저 무분규로 임금 협상을 타결지었다.

한 조합원은 “한 번 더 망하면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제 회사도, 직원도 많이 어른스러워졌다”고 했다.

공장이 정상 궤도에 오르면서 해고 근로자 중 1000여 명이 현장에 복귀했다. 회사는 내년 5월까지 복직을 희망하는 나머지 근로자 전원(500여 명)을 재입사시킬 계획이다.

2001년 정리해고됐다가 2년 반 만에 복직한 김병호(金秉浩·36) 씨는 “재입사했을 때 기분은 겪어본 사람만 알 것”이라고 기쁨을 표현했다. 그는 “투자가 늘어 내친 김에 신입사원도 많이 뽑았으면 좋겠다”며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근로자들의 표정이 한결같이 밝았다. 대우자동차 부도 이후 그들이 견뎌야 했던 ‘인고의 세월’이 힘찬 기계음 속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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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김석환 대우인천차 사장

“이제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김석환(金錫煥·61·사진) 대우인천자동차 사장은 기자에게 명함을 건네며 ‘대표이사직 유효기간’이라는 표현을 썼다. 조만간 대우인천차가 GM대우자동차에 인수된다는 뜻이다.

비로소 회사가 정상화됐다는 기쁨 때문인지 그의 표정은 홀가분해 보였다. 1999년 대우자동차가 워크아웃에 들어간 지 6년, 2002년 대우인천차가 탄생한 지 3년 만의 일이다.

1975년 ㈜대우에 입사한 그는 1997년 대우차 부사장, 2000년 대우차 입찰사무국 사장을 거쳐 2002년 대우인천차 출범과 함께 사장을 맡았다. 이후 대우인천차를 다시 살려낸 주역으로 꼽힌다.

“근로자도 경영진도 고생 많이 했지요. 다시는 부도나 정리해고 같은 아픔이 없어야 한다는 데 전 직원이 마음을 모았습니다. 빨리 정상화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지요.”

김 사장은 “GM이 대우인천차를 조기 인수키로 한 것은 우수한 현장인력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옛 대우자동차의 ‘주력’이었던 현장 기술력은 GM으로선 무시할 수 없는 매력이라는 것.

그는 또 최근 한결 나아진 노사관계에 대해 “전 직원이 안정된 직장을 갈망한 것이 큰 힘”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GM 인수 작업이 마무리되면 전 직원이 GM의 세계 60여 개 공장과 경쟁한다는 생각으로 일할 것”이라며 “노력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천=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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