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도청 후폭풍]삼성 “이르면 오늘 MBC상대 소송”

  • 입력 2005년 7월 25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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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으로는 정면대응 천명, 속으로는 고민 중.’

‘X파일’ 사건에 대한 삼성그룹의 현재 분위기는 이렇게 요약된다.

삼성은 ‘X파일 보도’와 관련해 MBC를 비롯한 일부 언론사에 대해서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과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법적 책임을 분명히 묻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MBC의 경우 이르면 25일 소송에 들어가겠다는 계획을 24일 공식적으로 밝혔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김준식(金俊植) 상무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안기부 내부문건이라면서 불법녹음 테이프와 거의 같은 내용을 보도한 MBC에 대해 소송을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이르면 25일이라도 (소송에) 들어갈 수 있다”고 밝혔다. 소송에 들어갈 경우 통신비밀보호법 위반과 명예훼손 혐의가 적용될 전망이다.

검찰 출신인 이종왕(李鍾旺·사장) 삼성 법무실장이 최근 “통신비밀보호법 관련 판례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이번 MBC 보도 건은 반드시 소송을 하겠다”고 말한 것도 이런 강경기류를 반영한다.

이 실장을 비롯해 삼성 법무팀에서 일하고 있는 법조인들은 “만일 MBC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면 모두 퇴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삼성의 고민도 적지 않아 보인다.

법적 문제와는 별도로 가뜩이나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 반(反)삼성 기류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삼성과 중앙일보, 정치권이 얽힌 ‘지저분한 거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X파일 사건으로 국민 여론이 악화되는 데 따른 파장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김 상무가 “다른 언론사도 MBC와 같은 내용으로 보도했을 경우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다른 언론사에 대해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라고 말한 것도 이번 사태와 관련된 ‘지나친 확전(擴戰)’에 대한 부담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 일각에서는 “불법 도청으로 만들어진 X파일을 보도한 것은 명백히 불법이지만 소송만이 능사는 아니다”며 “법률적 판단과는 별개로 더 논의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삼성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대(對)국민 사과문’을 내놓을지도 관심거리다.

삼성 구조본은 삼성이 곧 사과문을 발표할 것이라는 일부 보도에 대해 24일 “아직까지 사과문에 대해 논의한 적도 없고 발표를 결정한 일도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그룹 차원에서 각계에 이번 사건에 대한 의견을 묻는 등 여론을 파악하고 있어 결국 사과문을 발표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삼성 내부에서는 1999년 4월 이뤄진 공식적인 계열 분리에도 불구하고 ‘특수 관계’의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앙일보와의 관계를 이번 기회에 확실히 정리하는 것이 그룹의 앞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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