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자산효과’ 날개 달까…자산구조 예금서 투자로

  • 입력 2005년 7월 8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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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8월 다우존스지수가 8,000 선을 뚫자 미국 경제계는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앞으로 미국 증시가 대폭락한다면 원인은 외계인의 출현일 것이다. 외계인이 지구에 새 기술을 전수하면 펜티엄칩이나 윈도98 같은 첨단기술이 퇴물로 변할 테니까.”(시사주간지 타임)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에 시달리는 미국이 이렇게 큰소리를 칠 수 있었던 것은 이른바 ‘자산효과(wealth effect)’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다.

주가 상승이 투자자의 소득을 증대시켜 소비가 늘고, 이 덕분에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주가가 오른다는 것이 자산효과의 요체.

요즘 한국에도 자산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단순히 종합주가지수가 1,000을 넘었다고 나오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증시 체질과 투자자의 자산 구성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근거다.

○ 왜 한국에는 자산효과가 없었을까

지금까지 자산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한국 가계의 자산 구성 때문이다.

매달 기업연금을 넣는 미국 국민은 전체 자산의 40%를 금융자산 형태로 갖고 있다. 또 금융자산의 50% 이상은 주식에 투자되고 있다.

반면 한국 국민의 금융자산은 전체 자산의 17% 수준이다. 게다가 얼마 안 되는 금융자산 가운데 주식 비중은 고작 9%. 이런 상황에서는 주가가 오르더라도 소득이 늘어날 여지가 적다.

주가 상승으로 커진 파이를 대부분 외국인과 기관투자가가 챙겼다는 점도 자산효과를 어렵게 만든 요인이다. 국내 증시에서는 상승기 때마다 업종 대표주나 정보기술(IT)주, 주가수익비율(PER)이 낮은 종목 등 외국인과 기관이 많이 보유하고 있는 특정 종목들만 대체로 올랐다. 개인들이 주로 투자한 중소형 종목은 대부분 제자리걸음이어서 소득이 늘어날 여지가 없었다.

○ 자산효과 가능성

상황이 바뀌고 있다. 특히 가계의 자산 구성이 달라지고 있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삼성증권 이강혁 투자정보파트장은 “적립식 펀드 열풍으로 자산 구성이 예금에서 투자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증시도 달라졌다. 개인투자자 비중이 90%를 넘는 코스닥시장 시가총액은 올해 15조 원이나 늘었다. 이 돈은 대부분 개인의 소득 증대로 이어진다. 거래소에서도 기관과 외국인이 싹쓸이하다시피 한 대형주는 올해 12% 오른 반면 개인 비중이 높은 중형주와 소형주는 각각 41%, 58% 올랐다.

배당이 늘고 있는 것도 고무적. 배당금은 ‘현찰’이어서 당장 소비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분기 또는 반기배당을 한 상장회사는 2003년 167개에서 지난해 198개, 올해 209개로 늘었다.

굿모닝신한증권 김학균 연구원은 “중소형주가 증시를 이끌고 있는 것이 자산효과의 가능성을 예고하는 근거”라고 말했다.

○ 과제와 전망

하지만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주가 상승이 소비 증가로 이어져야 하는데 국내 투자자는 주식 투자로 번 돈을 ‘떨어질 때를 대비한 밑천’으로 생각해 소비하지 않는 성향이 강하다.

이를 해소하려면 종합주가지수가 1,000에서 500까지 오르내리는 불안정성이 제거돼야 한다. 또 일회성이 아니라 예금처럼 일상화된 주식 투자를 정착시켜야 한다.

LG경제연구원 이철용 부연구위원은 “적립식 펀드 열풍이 얼마나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느냐, 올해 말부터 시작될 퇴직연금제가 어느 정도 안착하느냐가 자산효과가 나타날 수 있을지를 보여 주는 척도”라고 지적했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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