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또 1000원 위협… 세 자릿수 시대?

  • 입력 2005년 4월 25일 0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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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다시 슬금슬금 떨어져(원화 가치 상승) 달러당 1000원 선에 바짝 다가섰다.

지난달 중순 외환당국의 강력한 시장 개입으로 가까스로 1000원 선을 지켰던 원-달러 환율은 서울 외환시장에서 18일부터 5일 연속 하락해 22일 1004.0원까지 떨어졌다.

세계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가치가 다시 떨어지는 데다 국내에서도 달러화 약세에 대한 전망이 우세해 ‘세 자릿수 환율 시대’가 머지않아 개막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미 달러화 반짝 강세=2002년 초부터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미 달러화는 지난달 22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연방기금 목표금리를 연 2.5%에서 2.75%로 인상하자 일시적으로 강세를 보였다.

높은 수익을 찾아 전 세계로 빠져나갔던 달러화가 미국으로 ‘U턴’하면서 세계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엔-달러 환율은 지난달 14일 달러당 103엔대 후반에서 이달 15일 108원대로 올라섰다. 달러-유로 환율도 같은 기간 유로당 1.34달러대에서 1.28달러대로 하락(달러화 가치 상승)했다. 원-달러 환율 역시 1022.5원으로 상승했다.

그러나 미국 경제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잇달아 나오면서 달러화 가치는 약세로 돌아섰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지난해(4.3%)보다 낮은 3.6%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도 “연방정부의 재정적자가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鄭永植) 수석연구원은 “최근 달러화 약세는 미국 경제가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금리 인상에 따른 플러스 요인을 압도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역외세력 ‘팔자’=최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 하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역외(域外)세력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지난달 역외선물환(NDF) 시장에서 30억 달러 이상의 선물환을 샀던 세력이 최근에는 공격적으로 매도에 나서 환율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역외세력이 국내 외국환은행에 선물환을 팔면 은행들은 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현물을 팔게 돼 환율 하락으로 이어진다.

역외세력들은 지난달 미국이 지속적으로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예상으로 원-달러 환율 상승을 점치고 대량으로 선물환을 사들였으나 상황이 바뀌어 엔-달러 환율이 하락하자 태도가 180도 돌변했다고 외환 딜러들은 전했다.

▽‘마지노선 1000원’ 지켜질까=일단 원-달러 환율은 1000원을 중심으로 치열한 공방을 벌일 전망이다.

외국인들의 주식배당금 해외송금이 끝나가고 있는 데다 역외세력과 수출업체의 매도, 달러화 ‘글로벌 약세’ 등이 환율 하락 요인이지만 ‘1000원 선’이 강력한 심리적 지지선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은은 지난달 10일 이후 사흘 연속 원-달러 환율 장중 1000원 선이 무너지자 달러를 무제한 사들여 1000원 선을 지켜냈다.

한은 관계자는 “환율 하락을 예상한 수출업체들이 취했던 과도한 ‘팔자 포지션(외환 보유 상태)’이 상당부분 정리돼 이제는 달러화가 압도적인 공급초과 상태는 아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외환시장운용팀 이정욱(李政昱) 과장은 “세계적인 달러화 약세는 한은도 막을 방법이 없지만 원-엔 환율까지 신경 써야 하는 당국으로서는 엔-달러 환율에 비해 원-달러 환율이 과도하게 떨어지면 시장에 개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엔 환율은 작년 말까지만 해도 100엔당 1012원 선이었다. 그러나 최근 원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더 많이 오르는 바람에 22일에는 940원대로 하락해 일본 기업과 경합하는 업종의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다.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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