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짙은 그늘… 온가족이 ‘생계 걱정’

  • 입력 2004년 11월 4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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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초등학생을 포함한 ‘로틴(low-teen·10대 초중반 청소년)’들이 아르바이트에 나서고 40대 이상 주부들이 취업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하는 사회’를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힘든 생계 탓에 무작정 일자리를 구하다 보면 열악한 구조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을 위한 제도적 개선 및 관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엄마는 점원으로… 4050여성 구직붐▼

조기퇴직과 청년실업이 늘어나면서 가계를 책임지기 위해 취업전선으로 뛰어드는 40, 50대 중년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업주부였던 김모씨(51·서울 서대문구)는 한 달 전부터 할인점 식품매장에서 파트타임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중소기업체 부장이던 남편이 지난해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을 졸업한 두 아들도 연거푸 취직에 실패해 김씨가 돈을 벌 수밖에 없었기 때문.

통계청에 따르면 40∼59세의 여성 취업자 수는 올해 3·4분기(7∼9월) 378만9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4.12% 늘어났다.

특히 40대 여성 취업자 수는 올해 1월 242만2000명에서 매달 꾸준히 증가해 9월에는 254만5000명으로 8개월 사이에 12만3000명이 늘었다.

그러나 이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은 한정돼 있고 이것마저도 20, 30대에게 밀리는 경우가 많아 일자리를 구하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5월 개장한 전북 전주시 한 대형 백화점의 경우 100명의 주부사원 모집에 무려 1000여명이 몰렸다.

여성부에서 지원하는 여성인력개발센터와 사설 직업전문학원에도 구직을 원하는 40, 50대 여성들로 넘쳐나고 있다. 특히 PC 경리, 웨딩 도우미, 한식 조리사 자격증반 등에 많이 몰리고 있다.

서울 한남직업전문학교 장애리(張愛里) 직업정보실 담당자는 “자아실현을 위한 경우도 있지만 조기 퇴직한 남편, 취직 못한 자녀들을 대신해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중년 여성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申민榮) 연구위원은 “40대 이상의 여성이 일할 수 있는 곳은 육체노동을 필요로 하는 저임금 일용직이 대부분”이라며 “고용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

▼아이들은 거리로… 초등생 ‘알바’ 몰려▼

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D아파트 일대.

학원을 중심으로 PC방 음식점 등이 많아 초중학생이 많이 모이는 이곳에서 앳된 얼굴로 전단지를 돌리는 어린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들은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아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초등학교 4∼6학년생이 대부분.

김모군(12)은 중국집 배달, 노점 등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고 말했다. 김군은 “일용직 노동자인 부모님이 최근 돈벌이가 시원찮아 용돈을 받을 처지가 아니어서 직접 용돈을 벌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특히 관악구 신림동 봉천동 일대와 노원구 노원역 부근은 1장에 1원씩 받는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쉽게 구할 수 있어 초등학생들이 선호하는 지역. 노원역 근처에서 만난 이모군(12·초등 5년)은 “우리 반 32명의 학생 중 10명 이상이 전단지를 돌린다”며 “재미로 하는 애들도 있지만 용돈을 벌기 위해 하는 애들이 훨씬 많다”고 말했다.

신림동의 유명한 먹을거리촌 음식점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초등학생이 적지 않았다. 주방에서 접시를 닦는 소녀들은 미리 업주들과 입을 맞춘 듯 일제히 “중학교 3학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학교와 나이를 물어보자 대부분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인터넷에는 오래 전부터 초등학생 아르바이트에 관한 글들이 수도 없이 올라오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만 15세 미만의 미성년자 고용은 불법. 그러나 용돈을 벌려는 미성년자들이 늘어나자 이들을 고용해 일을 시키고도 일당을 주지 않는 고용주도 늘고 있다. 인터넷에도 이런 악덕 업주에 대한 초등학생들의 불만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노동부 평생정책과 관계자는 “15세 미만 미성년자는 일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고용주가 회계장부에 기록을 아예 하지 않아 단속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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