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의 경제 이야기]끝나지 않은 ‘월드컴 악몽’

  • 입력 2004년 5월 12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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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은행을 인수한 미국 씨티그룹은 세계 최대의 금융업체다. 이 업체가 최근 화끈하게 26억5000만달러(약 3조1800억원)를 소송 화해금으로 내놓았다.

장거리통신업체 월드컴(현 MCI)이 2002년 회계부정이 드러난 끝에 도산하자 씨티그룹의 투자 추천을 믿고 월드컴 주식을 산 투자자들이 집단소송을 냈던 것. 월드컴 관련 소송액은 총 540억달러나 됐다.

사건 뒤엔 1990년대를 풍미한 통신산업 담당 애널리스트 잭 그루브먼이 있다. 씨티그룹의 계열사인 살로먼 스미스바니에서 월가를 쥐고 흔든 그는 월드컴과의 거래를 따내기 위해 월드컴의 투자 등급을 좋게 매겨주었다. 또 다른 기업이 기업공개를 하면 그 주식을 매입하라고 월드컴 경영진에 안겨주기도 했다.

사건이 불거져 그는 회사에서 쫓겨났고 회사는 후유증을 돈으로 막고 있는 것이다. 씨티그룹이 월드컴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해 주고 벌어들인 돈은 1억달러가 채 안된다. 씨티그룹은 지난해에도 엔론과 다이너지라는 기업에 대한 편법 금융과 관련해 증권거래위원회(SEC) 등과 화해금으로 1억4550만달러를 낸 일이 있다.

씨티그룹 최고경영자 찰스 프린스는 콘퍼런스콜에서 소송을 포기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월드컴과 엔론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요행을 바라거나 주사위를 굴리는 것보다는 보험에 가입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매스컴의 톱뉴스로 오르내리지 않고 소송 때문에 세상의 눈길을 끌지 않게 되는 것이 우리 회사의 목표다.”

씨티그룹은 일련의 사건과 관련해 잘못했다고 시인한 적이 없다. 이번 화해 합의문에서도 ‘씨티그룹은 위법사실을 부인한다’고 적었다.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금융업체가 위법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기꺼이 거액을 내미는 장면은 돈으로 면죄부를 사는 것과 흡사하다.

이 큰돈을 치르고도 씨티그룹은 법적 분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뮤추얼펀드 거래 관행과 관련해 다른 증권회사들과 함께 소환장을 받아놓고 있다. 그래서 씨티그룹은 소송 유보금을 67억달러 쌓아놓고 있다. 기업 스캔들 수습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드는지 알 수 있다.

뉴욕=홍권희 특파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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