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銀, 한미銀 인수]“펀드보다 은행 낫다” 정부 영향력

  • 입력 2004년 2월 20일 19시 16분


칼라일 컨소시엄의 한미은행 지분 매각 협상은 2003년 11월 15일 3년 동안의 지분 의무 보유기간이 끝나면서 본격화됐다.

씨티은행이 최종 인수자로 선정되기까지 3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그 과정에 유력한 후보가 나왔다 사라지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칼라일은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지분 인수자를 찾으려는 물밑작업을 시작했다. 한미은행 의 2대주주(9.76%)인 영국계 스탠더드 차터드 은행이 초반부터 유력한 인수 대상자로 떠올랐다. 곧이어 씨티은행 HSBC 테마섹홀딩스(싱가포르 투자펀드) 등이 후발 경쟁자로 등장했다. 미국의 GE캐피털과 국민은행도 제안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 협상은 미국 등 해외에서 기업 인수합병(M&A) 전문 변호사 등을 통해 시종일관 비밀리에 진행됐다. GE캐피털과 국민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4개 금융기관이 4파전을 형성했다.

스탠더드 차터드 은행이 대규모 실사단을 보내 한미은행에 대한 정밀 실사에 들어가며 한국 소매금융시장에 대한 투자 확대 계획을 제시해 주목을 받았다.

HSBC도 제일은행과 함께 한미은행에 대한 관심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그러나 11월 하순 이후 씨티은행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스탠더드 차터드 은행과 2파전을 형성했다.

씨티은행은 외국 은행 중에서는 가장 빠른 1967년 한국에 진출했고 한국 시장의 성장성을 높게 평가해 인수 의사를 강하게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스탠더드 차터드 은행도 2대주주라는 유리한 고지를 이용하면서 이후 협상은 칼라일 컨소시엄 등 3각 구도로 지루하게 진행됐다.

씨티은행이 유리한 위치를 점한 데에는 한국 금융당국의 역할도 한 몫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계 관계자는 “정부는 세계적인 금융그룹이 한미은행을 인수할 경우 한국 금융시장에 미치는 순기능이 가장 크다고 판단, 여러 경로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로 테마섹홀딩스는 칼라일이나 론스타 같은 투자펀드라는 한계가 있었고 스탠더드 차터드 은행은 씨티은행보다 규모가 작다는 것이 약점이었다는 것.

결국 2월 중순부터 씨티은행은 한미은행 인수전에서 단독 후보로 급부상했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한미은행은 어떤회사?…외환위기 이겨낸 ‘튼튼한 회사’▼

한미은행은 1981년 미국계 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대한상공회의소 소속 11개 대기업이 공동 출자해 만든 한미금융주식회사가 모태가 됐다.

당시 금융당국은 국내 금융산업의 후진성을 개선하기 위해 외국계 은행을 대주주로 참여시켰다. 한미금융주식회사는 이듬해 8월 금융통화운영위원회에서 은행업 인가를 취득했고 1983년 3월 한미은행으로 공식 창립됐다.

한미은행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소비자들에게 잘 알려졌다. 외환위기 이전까지 기업 대 가계 영업비율이 8 대 2에 이를 만큼 기업 중심의 영업을 해왔기 때문. 외환위기 이후 소매금융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

외환위기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오면서 튼튼한 회사라는 이미지가 부각됐고 1998년 경기은행을 인수하면서 소매금융에 박차를 가했다. 현재 한미은행의 기업 대 가계 영업비율은 6 대 4로 안정적인 구조를 갖췄다.

한미은행이 외국계 자본의 인수합병 표적이 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11월 현 대주주인 칼라일·JP모건 컨소시엄펀드가 한미은행이 해외에서 발행한 주식예탁증서(DR)를 사들이면서부터다. 이어 영국계 은행인 스탠더드 차터드가 지난해 8월 9.76%의 지분을 사들였다.

또 칼라일펀드의 한미은행 지분 의무보유기간(3년)이 끝나는 작년 11월을 전후해서 씨티은행 등 다수의 외국계 은행이 인수를 위해 실사작업을 벌여왔다.

한미은행의 지난해 말 현재 총자산은 55조7782억원으로 전국에 지점 225개(직원 수 2976명)를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해 46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