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금융회사 미국서 잘나가는 까닭은…

  • 입력 2003년 12월 14일 17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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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600만명의 ‘소국(小國)’ 네덜란드의 금융회사들이 미국에서 잘나가고 있다.

1990년대 초반 네덜란드의 ING은행과 ABN암로은행이 미국 진출에 나섰을 때 국제 금융계에서는 냉소적 시각이 적지 않았다. 영국, 독일, 프랑스의 금융회사들도 오랫동안 미국시장을 뚫기 위해 애썼으나 일부 기업금융 부문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필립스(전자), 아홀드(유통체인) 등 네덜란드의 다른 대기업들도 유독 미국에서는 별다른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ING는 미국 진출 10여년만에 생명보험 분야에서 5위의 자리를 굳혔다. 지난해 ING는 총매출 903억달러 중 52%를 미국에서 거둬들였다. ABN암로는 소매금융 사업에 치중하면서 지난해 총매출(215억달러)의 22%를 미국에서 벌어들였다.

ING와 ABN암로의 미국진출 성공은 철저하게 현지화 전략을 추구한 덕분이다.

97년부터 이퀴터블 라이프, 리라이어스타, 에트나 생명보험 등 미국내 대형 생명보험사를 잇달아 사들인 ING는 현지인(미국인)들에게 주요 직책을 맡기고 자율경영권을 보장했다. 최고 경영진이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는 중앙집권형 네덜란드 경영방식을 포기한 것.

ING는 또 대형 점포보다는 간단한 금융업무만을 처리하는 소형 점포 ‘ING 다이렉트’를 다수 설치하는 전략을 택했다. ING다이렉트 매장 내 카페를 설치한 것도 미국인들의 취향에 맞추려는 새로운 시도였다.

반면 ABN암로는 외국계 은행들이 간과했던 미국 중서부지역에 파고들었다. 라살 은행(시카고), 스탠더드 페더럴 은행(미시간), 미시간 내셔널 은행 등을 인수한 ABN암로는 중서부 8개주와 플로리다주에 주요 영업망을 갖춘 미국내 13위 은행(자산 기준)으로 떠올랐다. ABN암로는 중산층 히스패닉과 흑인 가구가 밀집한 지역에 점포를 집중 배치했다.

이와 함께 ING와 ABN암로는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등 미국 금융회사들이 절대우위를 확보한 투자은행 업무를 포기하고, 서로 겹치는 사업 부문은 최소화해서 과당경쟁을 피하는 전략을 택했다. 최근 ING와 ABN암로는 각각 뉴욕과 시카고 마라톤 경기를 후원하는 등 미국내 스포츠 마케팅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내년 ING와 ABN암로의 매출은 올해보다 줄어들 전망이다. 내년 금리가 상승하면서 올해 활황을 보였던 주택담보대출 사업이 30%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금융시장인 미국에 성공적으로 입성한 두 은행의 장기적인 성장세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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