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가 1일 입수한 한은 작성 대외비 문서와 외환 당국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9월 말 한은은 공식 외환보유액 304억3000만달러 외에 ‘국내 외화예탁금’ 명목으로 외화자산 270억달러를 보유하고 있었다.
국내 외화예탁금은 한은이 외환시장에서 사들인 달러를 외환보유액으로 잡지 않고 한은 국내 계정(計定)에 편입시켜 국내 은행에 빌려 준 외화자산을 말한다.
한은이 시장개입을 통해 확보한 달러를 정상적으로 외환보유액에 편입시켰다면 96년 말 현재 외환보유액은 654억2000만달러, 97년 9월 말 현재 574억3000만달러에 달했을 것으로 한은 문서는 밝히고 있다.
한은은 당시 재정경제원의 지시에 따라 이 외화자산을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과 시중은행에 런던 외화 조달금리(LIBOR)보다 낮은 금리로 빌려주었고 각 은행은 연 0.5∼1%의 추가 이자를 붙여 기업에 외화대출했다.
그러나 한은의 국내 외화예탁금은 97년 들어 외환사정 악화로 기업과 은행이 외화대출과 예탁금을 갚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무용지물이 된 채 외환위기로 이어졌다고 정부 및 한은 관계자들은 증언했다.
김석동(金錫東·당시 재경원 외화자금과장)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1국장은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면서 “그 정도 규모의 외환보유액이 가용(可用)외환으로 활용됐다면 외환위기를 상당 기간 늦출 수 있었고 만약 이 기간 중 구조조정을 할 수 있었다면 위기 자체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정규영(鄭圭泳·당시 한은 국제부장) 한은 부총재보도 “이 외화자산이 제대로 관리돼 한국의 가용 외환보유액이 600억달러 이상에 달했다면 외환보유액에 대한 대외신뢰가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 문서에 따르면 92년 말 196억4000만달러였던 국내 외화예탁금은 96년 12월 321억4000만달러로 늘어났다. 또 97년 초반 외환시장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9월까지 예탁금 중 일부인 51억4000만달러를 산업은행 등으로부터 돌려받았다. 김 국장은 “국내 외화예탁금은 86년 국제수지가 흑자로 돌아서 한은 외환보유액이 늘어나면서 시중은행의 과거 악성 외화부채를 갚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나중에 그 목적이 변질되면서 급격히 늘어났다”고 밝혔다.
김용기기자 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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