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흔들리는 '김치 종주국'

  • 입력 2003년 10월 23일 17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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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의 원조국은 인도다. 그러나 세계 카레시장은 인도 몫이 아니다.

김치도 같은 신세가 될 수 있다.

한국의 대표식품 김치가 글로벌식품으로 떠오르면서 외국업체들이 과실을 챙겨가고 있는 것.

한국인의 식탁마저 위협할 정도다. 이는 한국 김치업체의 전략 부재 때문이다.》

▽현지화 실패=일본의 김치시장은 1990년대 중반 건강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매년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다. 작년 한해 시장규모가 1조3000억원. 한국 상품 김치시장(4500억원)의 약 3배나 된다.

일본에서는 마늘과 젓갈을 넣지 않고 절임배추에 고추 등을 넣은 ‘일본식 김치’가 주종. 한국의 겉절이와 비슷해 유효기간도 4일을 넘지 않으며 샐러드처럼 먹는다. 익은 김치냄새에 익숙하지 않고 마늘을 싫어하는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현지화된 것. 한국식 김치는 시장의 10%를 넘지 못한다.

‘종가집’ 김치를 수출하는 ㈜두산 박은걸 해외영업팀장은 “초기에는 김치의 현지화에는 관심이 없었고 일본식 김치시장이 커지면서 일본식 김치 생산을 검토했지만 유통기한을 늘리는 기술을 개발하지 못해 시장을 놓쳤다”고 밝혔다.

일본 현지에 공장을 세우는 것도 비용이 많이 들어 포기했다. 일본식 김치시장이 이처럼 커질 줄 예상하지 못했던 것.

연간 1000억원에 이르는 한국식 김치시장도 업체간 과당경쟁으로 부가가치가 낮다. 65개 업체가 일본에 김치를 수출하고 있지만 고유브랜드를 가진 업체는 3, 4군데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 수출.

▽중국 김치의 공격=3, 4년 전부터 중국 산둥(山東)성과 푸젠(福建)성에 김치공장이 설립돼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다. 중국 김치공장은 미야마(美山), 고쇼(光商), 사이카(菜華) 등 일본 업체나 조선족, 화교 등이 운영하고 있다.

정안농산 염정선 차장은 “중국이 수출하는 김치는 모두 한국식”이라며 “유효기간 문제 때문에 일본식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국업체들은 일본식 김치시장을 일본업체에 다 내주고 한국식 김치시장을 놓고 일본 중국과 겨루고 있는 셈.

중국김치는 가격경쟁력에서 탁월하다. 한국산 김치의 kg당 수출가격은 2.77달러. 중국산은 0.38달러로 7분의 1에 불과하다. “김치생산 원가 중 인건비가 40%다. 중국산 배추 가격은 한국 배추의 3분의 1이다. 가격경쟁이 불가능하다.”(농수산물유통공사 수출진흥처 김영일 과장) “김치는 배추 잎마다 일일이 양념을 넣어줘야 하므로 자동화를 통한 노동력 절감도 쉽지 않다.”(영성상사 이호준 사장). 중국의 등장을 생각하지 못하고 생산공정 자동화 등을 위한 연구개발을 소홀히 한 것도 사실.

중국김치의 위력은 올해부터 두드러졌다. 일본은 지난해 중국산 김치 2000t을 수입했고 금년에는 3배 이상 늘어난 7000t을 수입할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김치는 최근 한국시장까지 넘본다. 한국도 지난해 1042t을 수입했고 금년에는 9월 말까지 1만4859t을 수입했다. 연말까지는 작년대비 20배가량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고속도로 휴게소, 단체급식, 교도소 등이 주요 소비처. 소비자들이 중국산 김치인줄 모르고 먹는다.

▽우왕좌왕하는 업체들=중국김치의 공세에 맞서려면 우리 업체도 중국에 공장을 세우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중국에 현지공장 신설을 준비 중인 한 업체 관계자는 정부기관이 주관한 수출업체 간담회에 갔다가 곤욕을 치렀다.

“중국에 공장을 세우면 배추나 양념을 생산하는 국내 농민들의 판로가 좁아진다”며 질책을 당한 것.

고심하던 업체들은 결국 정부에 기대기로 했다. 정부가 나서서 원산지규정 강화 등을 통해 중국산 김치 수입을 막아달라는 것.

박 팀장은 “현지인의 입맛에 맞는 상품개발, 자동화, 고가 브랜드 개발 및 저가 브랜드 중국 현지생산, 기능성 김치개발 등 진작 서둘렀어야 할 과제를 미룬 사이 일본과 중국의 협공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김치의 종주국’이라는 자부심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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